《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로 국내 독서가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오히라 미쓰요씨. 그녀의 새 책이 나와 반갑다. 하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그녀 자신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굴곡진 험난한 인생을 노력과 의지로 극복한 그녀였다. 2006년 변호사 남편을 만나 결혼함으로써 이제 탄탄대로 -그러나 계속 사회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인생을 살아가려는가 했다. 안정된 삶, 이제야 행복한 가정을 꾸릴 것인가 했다.
그녀가 낳은 딸 하루카는 다운증후군과 심장이상을 가지고 태어났다. 다시 그녀에게 시련이 찾아들었다. 미쓰요씨는 절망하지 않았다. 역시 그녀답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며 극복해나가려 한다. 물론 이런 말은 그녀에게 실례다. 그녀는 그녀의 소중한 딸을 두고 시련이니 극복이니 하는 말 자체를 싫어하리라. 하지만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엄연히 그런 단어로 말할 수 있는 냉정한 현실이다.
폐쇄적인 사회, 집단주의가 득세하는 일본에서 그녀와 그녀의 딸을 바라보는 동정어린 시선이 쏟아진다. 미쓰요씨는 꿋꿋하고 현명하게 처신한다. 그녀에게는 여러 의미에서 특별한 그녀의 아이를 위해 그녀만의 육아일기를 써내려간다. 이 육아일기에는 고전의 지혜와 그녀 자신의 경험과 지혜가 버무러져있다.
근데 이 고전이 흥미롭다. 배움에 멈춤이 없는 그녀가 아이를 키우며 집어든 책치고는 이상하다. 갑자기 《논어》라니. 개인적으로는 무척 흥미를 가지고 읽었고, 지금도 곁에 두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녀가 육아와 함께 펼쳐들기에는 어딘가 부조화스럽다. 여성인 그녀가, 과거 동아시아권을 철저한 봉건적 남성중심사회로 만든 그 기반이 된 유교경전을 꺼내든 이유가 뭘까. 더구나 여아에게 논어라니.
이에 대해 그녀는, 논어의 시대적 한계를 수긍하면서도 그로 인한 것들은 -인용이나 해석에서- 배제한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진리'"와 "나라와 민족을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것" 위주로 언급하고, 이를 본인 나름대로 소화를 시켜 메시지를 내놓는다. - 프롤로그에서 논어와 관련한, 저자 나름의 추억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적인 인연도 《논어》를 육아의 참고서로 이야기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책을 펼쳐보면 이렇다.
먼저 논어의 주요구절을 앞머리에 둔다. 다음으로 이에 대한 학술적 해석에 대해 짧게 언급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그녀의 생각을 상세히 펼쳐놓는다. "자녀 교육에 대입"해서 이야기해보기도 하고, 인생과 사회와 관련하여 말해보기도 한다. 여기에 그녀의 개인적 직·간접경험, 그리고 여러가지 생각을 녹여내었다. 주제는 학습, 대인 관계, 삶에 대한 태도이며, 이를 육아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차분하고 자상한 말투지만, 강건함이 묻어나오는 글도 적지 않다. 논쟁을 피하지 않으려는 모습은 변호사라는 그녀의 직분을 떠올리게 한다 - 그러나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p.43~44). 또 이런저런 사회문제 및 사건사고에 관하여 많이 알기에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처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법조인으로서의 특성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육아에 관한 그녀의 생각에 많이 공감되었다. 단단하게 다져진 그녀의 생각에서 거칠고 험한 인생을 살아오며 인간승리를 이뤄낸 그녀의 내공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밖에도 그녀의 여러가지 생각이 흥미로웠다. 친구에게서 들은 중국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 어린시절 놀러간 옆집 한국 친구에 관한 이야기, 오사카 부시장 시절 만난 한국분의 덕담 등을 기록해 둔 대목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문화를 수용하고 흡수하여 다채롭고 유연한 시각을 유지하는구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하여, 또 로스쿨과 사법시험에 관한 그녀의 생각(p.53), 자민당 국회의원에 관한 우회적 비판(?) 등도 인상깊게 남은 대목이다.
이런 내 인상은, 이 책이 중심적으로 인용하며 육아와 관련하여 고찰해보는 《논어》에 대한 내용을 배제한 뒤, 남은 부분에 관해서에 한한 것이니,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부디 이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받아들이셨으면 좋겠다.
*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