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용어도 하나의 언어적 「도구」다. 그 가운데 철학용어는 철학이 다루는 것들, 즉 어떠한 생각이나 사상을 인식하고 설명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그런 도구임에도 모르면 일단 알아보려 하지 않고 덮어놓고 거부하는 일이 잦다. 요즘같이 거대한 지적 소산이 쉽게 공유되고 검색할 수 있는 환경에서도, 반짝이는 궁금증을 충족시키지 않는 게 흔하다. 찾아보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감을 잡아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컨텍스트를 통해 매체에 사용된 용어의 의미는 어느 정도 눈치채지만, 정작 그 용어를 자신이 사용하려 할 때에는 부정확하게 사용하지 않을까 두려워 기피한다. 쉽게 말해 읽을 때는 알아차리지만, 쓸 때는 망설여지는 것이다.
그런 때에, 자주 쓰이게 되는 철학 용어를 모아 쉽고 재미있게 해설하여 놓은 책, 사전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 있다면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 멀리 돌아온 감이 있는데, 그렇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은 제목과 같이 '사전'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흔히 생각하는 사전은 아니다. 즉 사전식 나열에 그치지 않고 있다.
한글(번역판의 경우)로 표현된 서양식 철학 용어를 표제어로 삼아, 그 아래에 사전적 의미의 한문 번역어, 원어, 저자 나름대로 쉽게 의미를 풀어써 본 것, 예문을 썼다. 여기까진 사전식 나열에 가깝다. 그 아래에 "용어의 의미를 확실히 제시한 후 그 용어를 사용한 철학자의 사상이나 용어와 관련된 사항"을 언급한 상세한 해설이 그림과 함께 실려있다(대개 한 표제어당 1~4페이지 분량으로 되어 있다). 이 해설이 이 책을 단순한 사전의 모습에서 탈피하도록 한다. 즉 그러한 해설이, 이 책을 사전에 머무르지 않고 -저자 말대로- "'철학의 기초 지식'을 … 즐겁게 배울 수 있게 하(는) … 입문서 역할"도 겸하도록 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새로이 알게 된 것들은 아래와 같은 것이다.
르상티망, 레종데트르, 토톨로지, 레세페르, 아타락시아, 어포던스, 아프리오리/아포스테리오리, 알레고리, 앙가주망, 안티노미, 이돌라, 에피스테메, 시니피앙/시니피에, 시뮬라크르, 노마드, 브리콜라주, 리버테리어니즘, 코즈모폴리터니즘, 에포케, 기투, 탈구축, 차연, 에크리튀르, 트리/리좀, 멀티튜드, 미메시스, 아르케, 에이도스/휠레, 뒤나미스/에네르게이아, 모나드, 테오리아
주로 외래어로 된 용어들 가운데 배운적이 없거나 배웠어도 잊혀진 것들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러한 용어들 역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그 의미를 밝히는 검색결과를 풍부하게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만큼 잘 정리하고 쉽게 서술한 것은 많지 않다. 깜냥이 되지 않는 이들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자신의 무지를 감추기 위해 두루뭉수리하게 서술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책이나 인터넷 사이트, 논문에서 내용을 긁어오던지, 옛 일본 사상가가 번역한 용어를 그대로 옮기던지, 추상적인 용어들로 더 난해하게 서술하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초심자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친숙한 용어로 요목조목 상세하게 일러주는 결과물도 있지만, 그것까지 닿기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장점이 빛을 발한다.
사실, 알고나면 별 것 아니다. 저자는 "독일어나 프랑스어로 된 철학 용어를 보면 대부분이 이해하기 쉬운 일상어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중요한 것 하나만 꼽아본다면- 단순하다. 우리가 서양의 학문을 수입해서 사용하면서 이에 대해 충분히 숙고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철학 용어 대부분은 메이지 시대의 사상가 니시 아마네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선구자가 왜 이리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의미를 알기 힘든 용어를 사용"한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일설에서 이렇게 추측하고 있다. 메이지 시대 전중으로 하여, 서학(西學)을 도입해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려고 노력한 정치가들과 달리, 일본의 지식층의 반응은 서학에 대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기존 지식층들이 파고들던 유교나 불교 경전과 달리 비교적 구체적이고 쉬운 내용이라 별 관심을 못 끌었던 것도 큰 이유였다. 이런 지식층, 수재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한편에서는 서양의 용어들을 일본에서도 잘 쓰지 않는 한자를 동원하여 번역함으로써, 서양의 학문이 대단하고 기괴한 것들처럼 보이게 했다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개의 인문 · 사회과학 용어들 -다른 학문분야도 별반 다를 바 없으나- 이 대개는 이렇게 일본을 통해 번역이라는 가공과정을 통해 들여온 것들이다. 하지만 일제치하 식민지에서 이를 -그들의 스승이었던 일본인들에게서- 배운 지식인들이 충분한 고민과 사유 없이, 이를 그대로 수용하였다. 그런 뒤 한국에서 일본을 통해 한 다리 건너 수입한 서양 학문들의 기반을 닦아나가 오늘날의 높은 학문적 성취를 이뤄냈다. 그로 인해 학문적 성취는 이뤄냈을 지 몰라도, 여전히 우리는 일본에서도 난해하고 생소하게 여기는 한문식 번역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 물론, 열심히 학문의 기반을 닦아나간 초대 학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판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책은 이러한 용어를 쉽게, 또 간단한 말로 풀어쓰고 있다. 색안경을 끼고 현실 너머의 사변의 세계로만 바라보던 철학이 바로 우리의 곁에 내려와 우리의 삶과 맞닿은, 절실하게 필요한, 친숙한 학문임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저자가 낯설지 않았다. 최근에 저자의 다른 저작이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제대로 화내고 싶다》(비전코리아, 2013.09)가 그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바와 같이 "상가에서 철학 카페를 여는 등 철학의 대중화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저자. 철학을 전공한 전문가인 그의 이러한 노력을 가장 확실히, 단적으로 보여주는 출판물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한다.
이 서평은 네이버 북카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를 통해 제공받은 책으로 쓸 수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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