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본격파 ‘밀실희극‘
beatrice1007 2026/10/3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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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제벨의 죽음
- 크리스티나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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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 2003-06-01
: 206
'신(新)' 본격파 '밀실희극'
- [제제벨의 죽음],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948.
마을도서관의 <동서미스터리북스> 서가를 좀더 서성거려보고자,
'여성' 추리소설 작가들의 작품세계로 관심영역을 확장시켜 책들를 선정해보았었다.
그렇게 몇 권을 읽어보던 중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 1890~1976)로의 회귀가 불가피했고, 그녀의 '미스 마플' 시리즈 중 여태 읽어보지 않았던 몇 작품을 보고는 새삼 깨달았다.
'여성' 추리소설 작가 특유의 '신비'스럽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나만의 관념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래도 이미 내친 걸음.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단편' 추리소설로 유명했다던 에무스카 오르치의 [구석의 노인 사건집]까지 읽어보고 나서는,
오르치의 소설집을 반납하러 퇴근길에 들른 평일 저녁의 마을도서관에서 그냥 나오질 못하고는 또 다시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제제벨의 죽음(Death of Jezebel)](1948)을 마을도서관에서 빌려서 나왔다.
"이것은 '밀실살인'을 실제로 연출해 보인 것이오. 더군다나 수천 명의 눈이 지켜보고, 심지어는 자물쇠가 채워진 문 밖에서 사람이 지키고 있는 무대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라오. 범인은 틀림없이 이 제한된 장소에 있었을 것이오. 그리고 대기실은 온통 비어 있다시피 아무도 없었으므로 숨을 만한 데도 없고, 미리 숨어든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오.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살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모두 이 자리에 모여 있소. 또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살인 예고장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여기 모여 있소...
... 용의자는 자연히 예고장을 보낼 수 있는 나머지 6명으로 압축되겠죠. 그러나 지금 커트 양과 앤더슨 씨는 이 자리에 없소. 그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이라면 바로 베틸레이 양, 포트 씨, 엑스마우스 씨, 그리고 브라이언 브라이언 씨, 또는 (살해된) 이세벨 돌 양이 즐겨 사용하던 이름으로는 브라이언 '투와이스' 씨가 되는 셈이오."
- [제제벨의 죽음], <5장>,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948.
말레이시아 출생의 영국인 작가 크리스티아나 브랜드(Christianna Brand : 1907~1988)는 미국의 엘러리 퀸이나 존 딕슨 카와 같이 '본격파' 또는 '신본격파'로 분류되는 미스터리 작가로, '본격파'란 추리소설만을 위한 불가능한 트릭 또는 '밀실살인'을 '본격'적으로 배치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본격파'의 거장들 중 엘러리 퀸은 비현실적인 '연역(소거)추리법'으로, 딕슨 카는 마술과 같은 복잡한 '밀실트릭' 장치로 살인사건 이야기를 풀어간다.
크리스티아나 브랜드가 '신(新) 본격파'로 불린다면, 아마도 모든 '신(新)' 자들이 으레 그러하듯, 더 극단으로 나아가서 안그래도 비현실적인 '본격파' 트릭을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경향으로 볼 수도 있겠다.
여기서 '신(新)'은 '모더니즘' 이후 이를 계승하거나 또는 파괴하거나 하는 식으로 모호하게 등장했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포스트~(post~)'와 같은 의미가 된다.
[제제벨의 죽음] 또한 '본격파'의 고전적 장치인 '밀실트릭'을 기본으로 하되, 한 발 더 나아가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내내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미스디렉션(miss-direction)을 화려하게 구사한다.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추리소설의 주인공 '탐정'은 영국의 시골마을 켄트 주에서 나름 날리는 형사 '콕크릴' 경감이다.
남자 등골만 빼먹는 '요부(제제벨)' 이세벨 돌이 살해당한 때로부터 7년 전인 <1940년>이 이 소설의 '프롤로그'다. 이 때부터도 3류 여배우였지만 하는 짓거리는 유명배우 뺨치던 이세벨(제제벨) 돌과 역시 초록의 동색인 남자 3류 배우 얼 앤더슨은 예쁘지만 멍청한 아가씨 파페튜어 커크를 타락시켜 그녀의 남친 조니 와이즈를 자살하게 만들었는데 이 일로 인해 7년 후 이 세 남녀 망나니들은 모종의 살인예고장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 [제제벨의 죽음] 이야기의 서막이다.
주인공 콕크릴 경감은 이 중 조니의 전여친 파페튜어 커크의 초대로 런던으로 초청되나 이 대도시 런던에서는 이 시골의 형사영감이 생각보다 유명하지 않다. 어쨌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말레이시아 전선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참전군인들을 위한 전시회 중 귀부인과 11명 기사들로 구성된 야외극을 진행하려던 여배우 '제제벨'과 주요인물들만의 '밀실' 같은 무대에서 '제제벨'은 교살되어 추락사하고 기사역 중 하나였던 얼 앤더슨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백치미 아가씨 파페튜어 커크에게는 연이은 살인예고장이 날아들고, 시골경감 콕크릴은 런던 경시청의 젊은 경감 찰스워드와 함께 범인을 추리한다. 범인은 '밀실'과도 같던 야외극 무대 중심의 단 4인 중 하나일 터. 그러나 소설은 수많은 '미스디렉션'으로 독자를 헛다리 짚게 만들고 한편으로 시골 명탐정 콕크릴은 짧은 다리를 계속 억지로 꼬고 앉아 니코틴이 찌든 손가락으로 담배를 말아대며 '밀실살인' 사건의 퍼즐을 맞춰댄다.
"제제벨(Jezebel) : 이세벨. 구약성서 열왕기 하 9장 30~37, 이스라엘 아합왕의 아내로 '진한 화장을 한 제제벨'이라 불렸다. 남자를 유혹 또는 조롱하는 부도덕한 여자. 완곡한 의미로 매춘부라는 의미도 있다."
- [제제벨의 죽음], <1장>,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948.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추리소설 [제제벨의 죽음]은 시종일관 개그를 날려대며 무서운 연속 살인사건을 '희극'처럼 전개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요부 '제제벨'은 교살당하고, 그의 양아치 친구 얼 앤더슨도 결국 목이 잘린 상태로 발견되는 무서운 복수극이 전개되지만 한정된 용의자들이나 이들을 쫓는 형사들 또한 연신 개그를 쉬지않고 날리는 '희극'을 연출하고 있다.
다음으로 살인예고장을 받은 파페튜어 커크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등장인물들은 헛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야외극의 기사들이 입는 갑옷과 숙련된 말, 7년 전 자살한 조니 와이즈의 정체불명한 유가족의 실체 등이 뒤섞이고, 제정신 같지 않은 용의자들이 뜬금없이 동시에 자기가 살인자라고 자백쇼를 하는 난장판 미스디렉션까지 연출되다가 막판에는 엉뚱한 인물(사실 나는 이 여인이 범인인 줄 알았지만)을 체포하는 척 하더니, 궁극에는 애초에 콕크릴 경감의 퍼즐 중앙의 첫 조각이었던 그 인물이 살인자로 밝혀지는 급반전의 연속이 이어진다.
'신본격파' 여성 추리소설가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특징은, '본격파'의 복잡한 '밀실트릭'이 동반된 무섭고도 긴장되는 살인사건에 과감하게 개그를 입혀 '밀실희극'을 만들어낸 지점에서 '신(新) 본격파'가 된 것이 아닐까.
바로 그 지점에서 크리스티아나 브랜드는 분명,
'포스트-모더니즘'이 기존의 '모더니즘'을 넘어섰듯,
'신(新/post)'이라는 개념에서 '본격파' 선배들을 넘어섰다.
그렇게 나는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재제벨의 죽음]을 마을도서관에 반납하면서 곧바로, 또 다른 개그 추리소설가 조이스 포터의 '도버 경감' 시리즈 작품 중 한 권을 다시금 대출해 오게 된다.
***
- [제제벨의 죽음(Death of Jezebel)](1948), Christianna Brand, 신상웅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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