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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rice1007님의 서재
  • 당신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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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14
  • : 27,367
나에게 있어서 '구원(救援)'이란
- [당신 인생의 이야기] /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 / [기린의 심장] / [구름해석전문가]


1.

취학 전 인천 동구 송림동의 나는 대부분 혼자였다. 

나보다 두 살 많은 누나가 당시의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적어도 혼자는 아니었을는지 모르지만, 내게 예닐곱 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없다. 
누군가는 태어나면서 내뱉었을 '응애'도 기억난다 할지 모르겠으나, 내 인생 첫 기억은 잠시 할머니와 함께 인천 십정동에 살던 집 툇마루에서 누나가 하교하기를 기다리던 그 시간과 공간부터다.

당시 할머니의 안방 흑백 텔레비전을 통해 처음 보았던 마징가 제트와 저 멀리 대문 밖으로 국민학교 1학년이었을 재순이 누나가 들어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 시간과 그 풍경, 그 햇살의 기억이 아련하다.
십정동 시절 나에게는 그게 전부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부모님은 송림동으로 누나와 나를 데려왔다.
중동으로 일하러 간 아빠는 원래부터 집에 없었고, 매일 일터로 나간 엄마와 학교에 간 누나가 없던 오전의 송림동 2층 방바닥에 나는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림을 그렸다.
밖에 나가 놀 친구가 없던 나는 하루종일 혼자였는데 그런 나를 위해 엄마는 16절 갱지 한 다발과 모나미 볼펜 한 다스를 남겨줬다.
송림동에서 학교에 들어간 후로도 난 오후반에는 여전히 그러고 놀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모나미 볼펜만 쓰고 있다.

16절 갱지와 모나미 볼펜이 당시의 나에게 있어서 '구원(救援)'이었다.


2.

'구원(救援) 
: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내는 일'


갑자기 '구원(救援)'을 떠올린 건 재작년이었다.
그 동안 소설을 좀 멀리해온 듯 하여 오랜만에 단편소설 몇 권(채기성/이상욱/부희령 작가)을 골라 읽게 되면서였는데, 그러고는 이내 다른 책들을 읽느라 잊고 있었다. 

몇 달 전 동네 형인 이진 선배가 읽어보라고 건네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2002)라는 중단편소설집을 읽다가도 표제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1998)의 내용 전개가 기이하리만치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한참 후 읽을 책이 마땅치 않았던 잠시 내 고집을 접고 표제작 대신 다른 작품들을 먼저 읽으면서, 다시 '구원'을 떠올렸다.

중국계 미국인 테드 창(Ted Chang : 1967~)은 과학자가 되고 싶어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궁극에는 '소설가'가 되었다. 
1990년 단편소설 <바빌론의 탑>으로 데뷔한 이래 수 년에 한 편씩, 그것도 장편이 아닌 중단편 하나씩 발표하는 걸 보면 '전업작가'는 아닌 듯 하다. 아마도 나처럼 본업은 회사원이고 '부캐'가 '소설가'인 듯 한데, 테드 창은 '21세기 최고의 현역 단편작가'고, 나는 '나홀로 작가'라는 차이는 있다.


"물질 우주는 완벽하게 '양의적(兩義的)'인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이다. 모든 물리적 사건은 두 가지의 완전히 상이한 방식으로 분석할 수 있는 언술에 해당된다. 한 방식은 '인과적'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적이다. 두 가지 모두 타당하고, 한쪽에서 아무리 많은 문맥을 동원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부적격 판정을 받는 일은 없다."
- [당신 인생의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1998.


이진 선배가 읽고 울었다던 테드 창의 표제작 <네 인생의 이야기> 내용의 세밀한 내용들은 다 읽고 나서도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다만,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 '헵타포드'들이 두 가지(표음/표의)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것을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즈와 물리학자 게리가 알아내는 과정과 아마도 25세에 죽은 듯한 루이즈의 딸과의 추억이 수시로 교차하는 플롯을 통해서, 일상적인 삶의 '인과론'과 미래가 이미 정해졌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를 '목적론' 사이의 '양의적(兩義的)' 관계가 지배하는 나와 타인(당신)들, 즉 우리의 삶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제목이 가리키는 '네 인생'의 'You'는 직접적으로는 요절한 딸이고, 어린 딸과의 추억이 '이야기'의 한 면을 의미하겠지만, 결국에는 '너(You)'를 포함한 '당신(You)'은 '타인'을 넘어 외계생명체 '헵타포드'까지 포함한다. 외계인의 '이중적' 언어 또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우리 인생의 '중층복합성'을 은유한다.

테드 창의 대부분 소설은 과학적 지식이 모티브가 되는 일종의 'SF소설'이다. 양자역학(<바빌론의 탑>)이나 언어기호학(<네 인생의 이야기>/<일흔 두 글자>), 신학과 기후학(<지옥은 신의 부재>), 수학(<0으로 나누면>) 등의 모티브가 떠오르면 '과학자'답게 오랜 기간 공부하고 검증하여 인문학적 감성과 결합시켜 몇 년에 한 편 중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상을 받는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2001년에 발표한 <지옥은 신의 부재>다.
소설의 모티브는 기후재난은 사실은 천상의 천사들이 한 번씩  강림하는 이벤트라는 초현실적이고 신학적인 설정이다. 대천사들은 이런 강림을 통해 인류 다수를 '정리'하기도 하는데, 소수는 '기적'을 찾아 대천사들의 강림을 쫓는다. 그들의 목적이 바로 '구원'이다. 누구는 앞을 보기 위해, 누구는 걷기 위해. 
사랑하는 부인 사라를 대천사 강림 사고 중에 잃은 후 '지옥'같은 삶을 살던 닐이 역설적으로 '구원'을 찾아 대천사 강림을 쫓는 '라이트시커(Light-seeker)'가 된 후, 소설의 결말에서 깨달은 사실은 '지옥'이란 바로 '신(神)'을 늘상 느끼지 못하는 우리 마음속 '부재(不在)'함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닐은 자신이 신의 의식 너머에 존재함으로써 신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지만, 이것 역시 그의 감정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아무런 보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신의 의식 너머에서 오랜 세월을 지옥에서 살아온 지금도 날은 여전히 신을 사랑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
- [당신 인생의 이야기], <지옥은 신의 부재>, 테드 창, 2001.


과학이고 신학이고 얼버무려져 있어 복잡다단하지만, 그럼에도 결론은 그닥 어렵지 않다.
테드 창의 데뷔작 <바빌론의 탑>(1990)의 매우 반전적이고 충격적인 결말처럼 '양자역학'적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이 바벨탑 공사를 위해 다시는 지상에 내려올 기약도 없이 올라간 꼭대기의 경계를 넘으니 다시 지상이었다는 결론처럼. 


"어떤 이유에선가 하늘의 천장은 대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두 장소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치 서로 맞닿아 있는 듯 했다...
...
이제는 왜 야웨가 탑을 무너뜨리지 않고, 정해진 경계 너머로 손을 뻗치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는지를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결국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몇십 세기에 걸친 인간의 노력도 천지창조에 관해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것을 밝혀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노력을 통해 상상을 초월한 야웨의 예술성을 흘끗 보고, 이 세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를 깨달을 수가 있다. 이 세계를 통해 야웨의 창조는 밝혀지고, 그와 동시에 숨겨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우주에서의 자기 위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 [당신 인생의 이야기], <바빌론의 탑>, 테드 창, 1990.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가 모호하다(<네 인생의 이야기>). 지옥같은 신의 부재가 결국 은총일 수 있고(<지옥은 신의 부재>), 이름과 실체의 관계가 엇갈리며(<일흔 두 글자>), 영화 [루시]처럼 초인적인 지능은 결국 인류사를 무(無)로 만든다(<이해>).

물론, 과학의 영역에서 '양자역학'은 '모든 것이 서로 통한다'는 동양적인 동일성의 '순환론'을 의미하지 않는다지만, 테드 창의 과학과 신학 또는 인문학의 융합을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나는 또 다시 '구원'이라는 오랜 단어를 떠올린다.


채기성 작가의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2024)은 주제 자체가 '구원'이다. 소설집 내내 작가는 자신의 종교성을 숨기지 않는다. 가톨릭 사제를 준비하면서 '구원'이 무엇인지 계속 묻는 것을 보면 천주교 신자일 수도 있겠다. 그의 소설의 모티브는 앞으로도 일관되게 '구원'이 되리라. 종교적이든 아니든, 그 어떤 식으로든.

이상욱 작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퇴근 후 저녁 아홉시부터 자정인 열두시까지 소설을 쓴다고 하는데, 직장인으로 추정되는 이 작가에게 아마도 유일한 '구원'의 시간은 이 '글쓰기' 시간이 아닐까 싶다.

미국 역사학자 카일 하퍼가 로마의 쇠망사와 지구의 기후변화를 엮어서 쓴 [로마의 운명](2017)이라는 책의 번역자로 알고 있던 부희령 작가는 사실 2001년에 등단한 소설가였다. 번역도 하고 애인과 이별도 하고 히말라야도 등반했을 작가는 15년 만에 소설집을 냈다. 그녀에게 '구원'은 떠남과 비움, 그리고 여행이었나 보다.

누구나 자기만의 '구원'이 있거나, 찾고 있다.


3.

한 때의 내게 있어서 '구원(救援)'이란,
'혁명'이었다.
이 불평등한 체제의 변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혁명'을 할 힘은 없었으니, 그에 대한 '믿음'이었다.

레닌은 어디에선가,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이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단다.
철학과 종교가 형식만 다를 뿐 내용은 같다고 했던 헤겔의 후예가 맞는가 보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임박한 시점에서 각국의 사회민주당 조차도 애국주의 전쟁 지지로 돌아서던 세계 변혁운동의 망조를 보며 도서관에 틀어박혀 헤겔 철학을 다시 파헤치던 레닌에게, 1914년 [철학노트]를 끄적이며 마르크스 [자본론]과 당시 자본주의를 근본부터 다시 연구하던 그에게 있어서 '구원'은 '철학'이었던 거다.

이십대의 나는 '변혁'을 외치는 사람들의 주변에서 선봉이었던 그들을 따라 새세상을 꿈꾸었다. 그리고 '함께 꾸던' 이 꿈을 소설로 쓰고 싶었다.
이십대의 내게 있어서 '구원'은 '소설'이었다.

삼십대의 나는 여전히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을 빼고는 추억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으로 '혁명'이라기 보다는 유럽의 사민주의처럼 보편복지 실현을 강령으로 하는 정파연합정당이었지만 내게는 이십대에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노동자정당'이었다.
퇴근 후 만난 사람들과 함께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은 '진보정당'이었다.

진보정당 분열 후 직장의 노동조합을 찾았다. 정치적 민주화는 '87년 운동세대가 가져갔고, 경제민주화를 기획하던 진보정당은 뿔뿔이 정파 따라 흩어졌다. 사십대 노동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산업민주주의, 직장민주화였다. 결국 노동조합을 통해서도 '혁명'이라는 화두를 풀 능력이 없었지만, 한때 내가 이 세상의 변화에 그나마 기여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당시의 내 정체성을 규정했던 시간이었다. 
조합원들을 만나던 그 시절, 내게 있어서 '구원'은 '노동조합'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지 않고는 나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일종의 강박 같은 걸 붙잡고 산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읽는 글을 쓰고 싶어 본격적으로 '주간 문사철'을 쓰기 시작한 것이었지만, 사실은 나만을 위해 쓴 거였다. 본업은 있으되 '서평' 하나를 쓸 생각으로 책을 골라 읽고 한 주를 버텼으며, 주말에 쓴 '서평' 하나로 모종의 '강박'을 잠시 플고는 본업으로 돌아가 또 한 주를 살았다.
최근 나의 '구원'은, 날 위한 '글쓰기'였다.

오십대도 중반으로 치닫는 이제,
일상의 삶에서 '구원'을 찾을 때.

그러나, 나이 들수록 더더욱 모르겠다.
바빌론의 탑 꼭대기가 닿는 천상의 경계를 열고 넘어서면 다시 지상의 제자리일까.
신의 부재가 결국 신의 은총이 되는 모순의 동일성이라는 '허무주의'로 인도되는 것인가.

과연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바라 마지않는 '구원'이란.
나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

1.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2002), 테드 창(Ted Chang), 김상훈 옮김, <행복한책읽기>, 2004.
2.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 채기성, <교유서가>, 2024.
3. [기린의 심장], 이상욱, <교유서가>, 2021.
4. [구름해석전문가], 부희령, <교유서가>, 2023.
5. [로마의 운명](2017), 카일 하퍼, 부희령 옮김, <더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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