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연구할 때 최우선적으로 피해야 할 오류가 선악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그 시대의 당사자가 처했던 상황과 개인적 판단을 후세 사람이 거울 보듯 100%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과 악이라는 잣대 또한 후세 사람들의 임의적 판단일 뿐, 절대적인 역사 평가의 도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러한 선악 이분법적 역사평가의 경향이 강한 편인데, 결코 바람직한 흐름이 아니다. 자칫 이러한 선악 판단을 프로파간다로 교묘하게 이용하는 세력들에게 휘둘리게 될 뿐이다.
"그때 그러지만 않았더라면~" 같은 가정은 역사 연구에 있어서 무의미한 가정법이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아졌을 거라는 전제 또한 오류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건에도 음과 양의 양면적 효과가 있다.
철저한 사실(史實)에 근거하여 역사를 서술하되, 당시 상황과 국제적 환경으로 인한 역사적 불가피성이나 필연성을 밝혀내는 것이 후세 사람으로서 최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모든 근대는 당연히 식민지 근대이다. 이는 식민지를 사회진화적 문명론의 발전단계론에 따라 하위에 위치시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이란 언제나 유동적인고 변화하는 것이다.
기억이라는 실재는 없으며, 현재의 자기 위치에 비추어 ‘과거의 이야기’를 계속 언급하는 기억하기=회상이라는 과정이 존재할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기억과 민족의 상생관계 곧 역사-기억을 해체하고, 식민지에 대한 공식기억과 국민 만들기 과정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기억을 회복함으로써, 기억을 다원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기억 연구의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정의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정의를 회복함으로 도덕성을 회복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청산을 통하여 정의와 도덕성을 전부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또 다른 부정의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제 말기 친일협력자로 규탄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국주의 국가의 억압에 의하여 민족에 대해 회의하고 오히려 제국주의 국가로 ‘탈출’하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길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고 있었던 바, 대중들은 광범위한 일상적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인간의 선택은 소우주로서의 인간의 고뇌 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식민지기 한 자본가의 활동을 통해 말의 어려움을 새삼스레 맛보았을 뿐만 아니라, 말의 어려움은 사유의 어려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사유의 어려움이란 개념화의 어려움, 곧 인간의 삶을 유형화하고 보편화하는 것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좋든 싫든 근대화를 식민지 기간을 통해서 이루어왔다. 그 과정에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모든 국민이 지배세력과의 일정한 협력 구조 속에서 살아왔다.
역사학을 통해서 과거를 어설프게 헤집으면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고 상벌을 주자는 흑백 논리는 인간의 기억/기록이라는 부실한 근거 위에 또 하나의 악업을 쌓는 어리석은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