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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님의 서재
  • 그림 읽는 밤
  • 이소영
  • 18,000원 (10%1,000)
  • 2025-12-24
  • : 5,500
이소영 작가의 《그림 읽는 밤》은 미술을 ‘잘 아는 사람들’의 영역에서 꺼내어, 그림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 누구나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미술 에세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낀 점은, 작가가 그림을 소개하는 방식 자체가 기존의 미술서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미술사를 차근차근 정리하거나 유명한 명화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대신, 작가는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들을 조용히 꺼내어놓고 그 앞에서 천천히 머무는 시간을 선물한다. 덕분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처음 보는 그림인데 이상하게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가 수없이 보아온 유명한 작품은 이미 눈에 익어 해석을 덮어쓴 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그런 익숙함 대신 낯섦이 주는 집중과 몰입을 선사한다. 처음 보는 그림인데도 단숨에 끌리는 이유는, 작가가 그 그림을 바라보는 감정의 결을 아주 섬세하게 건네기 때문이다. 설명이 앞서지 않고 감정이 먼저 와닿기 때문에, 독자는 그림을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작품 옆에 마련된 넉넉한 여백, 즉 독자를 위한 기록 공간이다. 각 장마다 한 점의 그림이 소개되고, 그 아래에는 작가가 발견한 포인트와 그림이 품고 있는 감정의 흐름이 담백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 옆에 놓인 빈 공간은 독자를 위한 자리다. 그림을 보고 들었던 생각, 떠오르는 사람, 그날의 감정, 어쩌면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작은 단상까지도 적어볼 수 있다. 책이 제공하는 해설을 바탕으로 독자가 직접 감정을 기록하는 이 구조 덕분에, 《그림 읽는 밤》은 읽는 순간마다 ‘내 책’이 된다. 시간이 지나 다시 펼쳐보면 한 권의 에세이가 나만의 미술 일기로 바뀌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제목처럼, 이 책은 ‘밤’이라는 시간에 유난히 잘 맞는다. 낮의 소음과 분주함이 가라앉고 마음이 조금은 허약해지는 시간. 그때 책을 펼치면 그림 한 장이 나에게 아주 조용하게 말을 건다. 어떤 그림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고, 어떤 그림은 마음을 붙잡아주며, 어떤 그림은 잃어버린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이소영 작가는 이러한 감정의 진폭을 인위적으로 흔들지 않는다. 과하게 감동을 요구하지 않고, 과하게 지식을 채우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림과 독자 사이에 소음을 걷어내고, 감정이 흘러갈 틈을 마련해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을 잘 알지 못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그림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편안하게 책과 함께 호흡하게 된다. 작가의 설명은 어렵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다. 전문적인 내용을 최소한으로 담아 그림의 핵심을 잡아주되, 마지막 판단은 언제나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이 균형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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