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80권을 모두 읽지는 못했지만 유명한 작품들은
대략 읽었다. 이제 집에 있는 책 중에선 유일하게 남은 게 바로 이 책인데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딱 적당한 때가 된 것 같았다. 사전에 전혀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봤는데 알고 보니 4편의
작품이 수록된 단편집이었다. 원래는 6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라는데 해문 시리즈에선 '패배한 개'와
'24마리의 검은티티새'를 다른 단편집에 수록해서 이 책에선 4편만 만나볼 수 있었다.
다른 책에선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애거서 크리스티가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소개하는 머리말이
먼저 등장한다. 이 책을 크리스마스 요리책이라며 '주방장의 일품선택요리'로 비유한다. 2가지 주된
요리가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과 '스페인 궤짝의 비밀'이고 그 앞에 나오는 '앙트레'가 '꿈'과
'그린쇼의 아방궁', '패배한 개'로, 디저트에 해당하는 '소르베'로 '24마리의 검은티티새'를 꼽는다.
첫 작품인 '크리스마스의 푸딩의 모험'은 포와로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제목 그대로 크리스마스 푸딩과
얽힌 미스터리를 다룬다. 크리스마스에 초대를 받은 포와로가 기이한 사건을 해결하고 사라졌던
보석을 되찾는 얘기인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역시 모든 일은 포와로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스페인 궤짝의 비밀'은 남편의 살인범으로 체포된
애인의 무죄를 밝혀달라는 부탁을 받은 포와로의 활약상이 그려지는데 이전에 나왔던 '리가타
미스터리'란 단편집에는 '바그다드 궤짝의 비밀'로 수록된 적이 있었다. '바그다드~'에선 포와로의
단짝 헤이스팅스가 나왔다면 '스페인~'에선 레몬 양이란 비서가 등장한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용의자가 한정된 상황에서 독특한 트릭이 사용되어 나름 인상적이었다. '꿈'은 자신이 자살하는
꿈을 꾼다고 포와로에게 상담하러 왔던 남자가 실제 죽은 사건을 다루고, '그린쇼의 아방궁'에선
미스 마플이 등장해 여주인을 살해한 범인을 명쾌하게 밝혀낸다. 두 작품은 범인이 사용한 트릭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오랜만에 본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으로 단편집이라 비교적
가볍게 즐길 수 있었는데 믿고 보는 크리스티표 미스터리를 유감없이 보여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