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 동안 뮤지션 김사월과 시인 이훤이 주고받은 편지를 읽었다. 음악과 시에 닮은 구석이 많은 것처럼, 두 사람의 대화는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두 마음인 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사월의 마지막 편지에 담긴 “우린 그냥 네가 겪고 내가 겪는 일들에 눈물이 나는 친구잖아”라는 문장처럼, 서로에게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돈독한 우정을 형성한 이들의 대화라는 편안함이 있다.
“편지하며 깊어진 이 우정이, 미래에 찾아올 새 우정 앞의 나를 바꿔 놓았다”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대에,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은 뭘까. 어릴 땐 까만 종이에 흰 펜으로 깜지 같은 편지를 써서 선물하기도 하고, 부모님께 혼난 뒤 사죄의 편지를 써서 방문 밑으로 밀어 넣기도 했던 것 같은데. 모든 게 짧고 빨라진 시대에 역행하듯 길고 느린 편지를 부치는 것은 우리 사이의 필연적인 빈틈을 인정하는 행위 같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영원히 알지 못하겠지만 이해해 보려는 시도를 끝끝내 멈추지 말자고 말하는 것. 편지를 쓰며 살고 싶다는 훤의 말에 공감이 됐다. 그러러면 친구에게 “집 주소나 이메일 좀 알려줄래?” 같은 꽤 수상한 말을 던져야 하지만…
음악과 글, 사진 등 여러 분야를 횡단하는 예술가들의 글을 읽으면 독자 역시 여러 가지 체험을 하게 된다. 편지라는 틀 안에서 삶을 둘러싼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것부터, 작업물을 선보이고 의견을 주고받는 것, 이미지로 대화를 나누는 것까지. 김사월과 이훤이란 사람의 레이어를 한 겹씩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귀하던 것이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되는지”
2년을 준비한 앨범도 발매 2개월 만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고 공허감을 토로하는 사월과 책도 그렇다는 훤의 답장을 읽을 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출판계에 있으며 여러 번 느낀 마음. 책은 너무 많고 읽는 사람은 기대만큼 없어서, 출간하고 겨우 한 달 남짓 홍보에 에너지를 쏟은 뒤 다음 책으로 넘어가게 되곤 한다.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과 한없이 소진되는 몸의 부조화, 무력한 자신을 마주하는 건 충분히 울적해지는 일이다. 타인의 글에서 예상치 못하게 내 마음을 발견하다니, 무척 반갑고 안심이 됐다.
『고상하고 천박하게』를 읽는 동안 사월의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다. 편지에서 자주 언급되는 〈칼〉을 특히 여러 번 재생했다. 어떤 이의 목소리는 흘러나오는 순간 음악이 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책을 읽을 땐 가사가 없거나, 있어도 의미를 알 수 없는 곡을 트는 편이지만(스포티파이 알고리즘에 빚지는 중), 그의 음악은 맑고 청아하며 텍스트에 집중하는 데 무리가 없다. 때때로 자연 한복판에 놓인 것 같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다들 책과 함께 즐겨보시길!
+ 편지를 읽다 보니 사월과 훤이라는 호칭이 익숙해져서 내 멋대로 그리 불러보았다. 실례를 무릅쓰고...
++ 『고상하고 천박하게』는 열린책들의 〈둘이서〉라는 에세이 시리즈 첫 작품이라고 한다. 책날개에 수록된 출간 예정작을 보니 궁금한 기획이 많고! 출간 전까지 각각의 책을 읽으며 그들이 나눌 이야기를 상상해 볼 생각에 설레는 일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