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라는 단어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올까. 아직도 시도해보지 않은 게 산더미 같은데, 시간이 좀 더 흐른다고 안-초보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 엄마는 50세가 넘어서 배드민턴을 배웠다. 그렇게 좋아하는 운동을 왜 이제 시작했냐고 물었던 날, 엄마는 "옛날엔 아줌마가 짧은 옷(운동복) 입고 운동하면 사람들이 흉봤어. 자식 안 돌본다고 뭐라 하기도 하고."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엄마가 저녁 시간에 사람들과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며 라켓을 휘두르는 건 불과 몇 년 전에 열린 신세계인 것이다. 엄마는 요즘 사는 게 재밌다고, 밤새 놀아도 안 피곤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50년을 살아도 새로운 게 많아서, 여전히 초보인 게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은 초보인간 '강이슬'의 도전기이다. 그가 다루는 도전은 크게 운전과 채식인데, 도전 계기가 거창하지 않다는 점에서 가장 공감이 됐다. 그는 "탱크만 한 SUV를 한 손으로 몰면서 해안도로를 달리는 내 모습은 얼마나 멋"질지 상상하며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하고, 제육볶음을 먹고 나서 강아지의 배를 쓰다듬다가 식습관에 의문을 느끼고 채식을 시작한다. 문득 내 경험이 떠올랐다. 복수전공을 결정하고 독서모임을 만들고 수영을 시작할 때 딱히 대단한 생각이 있진 않았다. 그냥, 필요할 것 같은데? 해야할 것 같은데? 하는 막연한 마음가짐이 나를 변화시켰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그의 초보 시절은 말 그대로 웃기고 슬프다. 배우려고 온 학원인데 유튜브 보고 공부하라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디스크가 있다며 학생에게 부드러운 도로주행을 요구하는(알려주지도 않고!) 선생님도 있다. "밥상 위에 사랑하는 존재들을 올리지 않음으로써 내가 바라는 나를 천천히 닮아가"려 노력하는 와중에, 비건인 나 때문에 가족과 지인들이 불편해지는 건 아닐까 걱정하게 되기도 한다. 후자는 비건 불모지인 한국에서 피할 수 없는 내적 갈등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강이슬은 포기하지 않는다. 올챙이 적을 기억하는 개구리로서 '초보내리사랑'의 세상을 만들자고 역설하고, 완전무결하지 않은 나를 얕봐도 좋으니 비건 세계에 발을 들여보라고 초대한다. 나는 운전과 채식 모두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진 채로 실천하지 못한 상태라 "언니 말에 속아서 내가 이렇게 개고생하잖아."라고 툴툴대면서라도 따라가고 싶어지곤 했다.
마지막으로 황선우 작가의 추천사를 인용하고 싶다. 그의 글 덕에 초보에 대해 다시 정의 내릴 수 있었다.
"누군가를 초보로 만드는 건 노련하지 못함이 아니라, 낯선 세계에도 자신을 던져보는 용감한 시도 그 자체다. 강이슬 작가의 글을 읽으면 세상의 모든 초보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 응원은 커지고 번져서 나에게로 돌아온다. 누구나 인생의 어떤 영역에서는 영영 초보일 뿐이니, 초보를 응원한다는 건 곧 우리 모두가 기꺼이 씩씩하게 살아봐도 괜찮다는 감각일 것이다."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큼이나 나를 믿고 싶어 하는 존재가, 나만큼이나 나를 살리고 싶어 하는 존재가 또 있을까.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죽을 때까지 나는 나를 떠날 수 없으므로, 평생을 나랑 살아야 하는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할 사람이 이왕이면 멋지고, 사랑스럽고, 든든했으면 좋겠다.- P33
어른은 고사하고 내가 먼저 되어야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어른은 불행의 다른 말처럼 느껴졌다.- P61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무엇이 미안하냐고 묻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 알고 있었다. 인간이 무엇을 미안해해야 하는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본래 고통을 주는 존재보다 받는 존재들이 고통에 대해 더 낱낱이 아는 법이니까. 고통을 준 존재들은 어떤 고통을 가하고 있는지 공부해야 겨우 알지만 고통을 받는 존재들은 피부에 촘촘히 스민 고통을 그저 고통스러워하며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니까.- P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