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소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픽션과 논픽션, 작가와 독자, 그리고 창작의 주체와 객체라는 경계를 허물며 글쓰기의 본질을 정밀하게 파헤친다.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은 순간 이미 이야기의 포로가 되어버린 한 인물의 내면을 다루며, 삶을 관조하던 이가 어느새 자신이 지어낸 문장의 격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묘한 상황을 포착한다. 진실이라 믿었던 현실이 사실은 누군가의 펜끝에서 빚어진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그 속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아이러니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쓰는 자와 쓰이는 자의 위치를 집요하게 뒤바꾸는 이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라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과연 진정한 저자는 누구인가 하는 서늘하고도 매혹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