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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소통
Youngwoong Kim  2026/10/23 12:56
  •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외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8,820원 (10%↓490)
  • 2010-06-10
  • : 726

거짓 소통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저,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를 다시 읽고 (‘그믐’과 함께)


뾰뜨르 이바니치와 이반 뻬뜨로비치 사이에 오고 간 아홉 통의 편지.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오해와 미움만 커졌고, 끝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절교를 선언하게 된다. 중간에 끼인, 표면적으로는 아홉 통의 편지의 발단이 된, 예브게니 니꼴라이치만 어부지리로 궁극의 승리자 자리를 꿰차게 된다. 예브게니는 두 사람의 아내와 각각 연인 관계에 있었거나 현재 진행 중인 남자다. 


소설은 이반 뻬뜨로비치가 소개해 준 예브게니 니꼴라이치에 대해 뾰뜨르 이바니치가 불만을 토로하며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편지로 시작한다. 휴대전화가 없던 19세기 러시아 제국 시대, 둘은 서로를 만나기 위해 서로의 집은 물론 여기저기를 찾아다니지만 정작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 매번 정당하게 보이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지만, 오고 간 편지를 차례대로 읽다 보면 그 이유는 핑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만나자고 하면서도, 특히 뾰뜨르 이바니치의 경우, 진정 만나고 싶어 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나름대로 친분이 있던 관계가 편지 아홉 통만에 파국으로 치닫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란 무엇인지 그 경박함에 대해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된다. 


표면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던 예브게니에 관련된 문제는 편지가 오갈수록 희미해진다. 대신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돈거래가 주요 화제로 등극하여 절교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초독 땐 놓쳤던 것 같고 두 사람이 덤 앤 더머로만 보였는데, 재독 땐 둘의 관계가 더 이상 수평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뾰뜨르가 돈 문제와 관련해서 이반에게 뭔가 잘못을 했다는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였다. 물론 상대적이겠지만 말이다. 말하자면 뾰뜨르가 상대적으로 더 가해자, 이반이 상대적으로 더 피해자의 위치에 놓인 구도로 읽혔다. 예브게니 문제도 뾰뜨르가 정작 중요한 돈 문제를 은근슬쩍 넘어가거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큰 그림의 작은 조각으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뾰뜨르에게서 악함을 느꼈고, 이반에게서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봤자 이반 역시 뭔가를 숨기고 있었고 뾰뜨르에게 당당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드러내기 위해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감추기 위해 글을 쓴다. 뾰뜨르는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소통의 수단이어야 할 편지도 자기 뜻을 관철시키고 입바른 거짓으로 진실을 덮으려고 하며 문제의 핵심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변죽만 울리는 일방적인 폭력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뾰뜨르라는 인간에게서 나는 또 다른 인간의 본성을 엿보게 된다. 


덧붙여, 재독 때 눈에 띈 것 중 한 가지는 두 사람의 이름이다. 이름과 부칭이 서로 뒤바뀐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뾰뜨르 이바니치는 이반의 아들 뾰뜨르이고, 이반 빼뜨로비치는 뾰뜨르의 아들 이반이기 때문이다. 왜 도스토옙스키는 이런 설정을 했을까? 두 사람 모두 고상한 척하며 소통의 부재를 겪고 자기 얘기만 하지만, 결국 둘은 똑같다는 것, 똑같이 눈먼 바보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예브게니에게 각자의 아내의 사랑을 빼앗긴 증거를 소설 마지막에 보여주는 것도 다 이를 위함이지 않았을까? 도스토옙스키는 역시 천재다.


#열린책들 

#김영웅의책과일상 


* 도스토옙스키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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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상처받은 사람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5. 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6. 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7.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8. 노름꾼: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9. 백치: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10. 악령: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11. 미성년: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12.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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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https://rtmodel.tistory.com/2275


* 도스토옙스키 처음 읽기

1.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2. 백치: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3. 악령: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4. 미성년: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6. 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7. 가난한 사람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8. 분신: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9. 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10. 노름꾼: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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