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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실감
Youngwoong Kim  2026/08/10 11:10
  • 서성이다
  • 장강명
  • 13,500원 (10%750)
  • 2026-08-05
  • : 31,020

뒤늦은 실감


장강명 저, ‘서성이다‘를 읽고


밀려드는 감정이 아닌 차오르는 감정은 실감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리는 걸까. 아니 어른이 되고 나서 인간은 실감이란 걸 제대로 할 수나 있는 걸까. 어른 인간은 이미 와 버린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성이라는 여과지를 통해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그걸 이성이라고 부를 수나 있는 걸까. 사람을 무뎌지게 만드는 이성 따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지부조화일까. 혹시 감정 불능은 아닐까. 혹시 소시오패스는 아닐까.


소설가 장강명은 어느 날 인지적 벼락을 맞는다. 불치병인 교모세포종이라는 뇌종양이 아내의 머릿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흐드러졌던 벚꽃이 다 졌던 2025년 4월 말이었다. 


소설 속 안시찬은 장강명의 분신이다. 현실세계의 장강명과 소설 속 안시찬은 황망한 아내의 뇌종양 소식에 당황해한다. 아내를 둔 남편이라면 그 누가 당황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 모든 남편들은 아마도 소설 속 3일이라는 시간 동안 마치 모든 일이 자신에게 벌어진 것처럼 응급실과 병원을 오가며 아드레날린이 치솟은 채 안시찬에 빙의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그랬다. 길지 않은 분량 탓도 있겠지만, 자정을 넘기고도 페이지 넘기는 동작을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이미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를 자주 들어서 그들의 서사를 거의 다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소설은 장강명 작가 본인과의 거리 두기를 위해서인지 3인칭 시점으로 쓰였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오히려 소설은 주인공 안시찬의 심경을 보다 객관적이고 절제된 문체로 묘사한다. 소설 속 이야기의 발단은 아내에게 생긴 이상 증상이었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은 남편 안시찬이다. 제목에 등장한 ‘서성이다’의 주체도 안시찬일 것이다. 


이 작품은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와도 초점을 달리하여 날벼락같은 아내의 암 소식을 접하고 그것을 현실로 인지하기까지 남편 안시찬의 서성이는 내면을 조명한다. 그 내면은 불안과 공포, 체념과 자기 비하, 성찰과 자기 합리화 등이 마구 뒤섞여있다. 그러나 이 모든 혼란을 통해 주인공은 이미 먼저 와서 몸을 장악하고 있었던 슬픔과 아내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지울 수 없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실감하게 된다.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현실에서 터지고, 하필 그것이 내 것일 때 아마도 대부분은 감정과 이성의 부조화를 경험하지 싶다. 사건의 규모와 그것을 인지하는 나의 제한된 능력, 그리고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나의 작은 그릇 등으로 인해 이미 내면은 난장판이 되기 마련이다. 여기에 평소 억눌러왔던 감정들(죄책감이나 후회와 미련 같은)마저 끼어들게 되면, 그야말로 죽고 싶은 마음,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감정들을 처리하고 뒤늦은 실감을 하는 동안에도 고통만은 그 어떤 것도 가리지 않고 안과 밖 모두를 침투하고 장악한다. 이 부분에서 장강명은 말한다. 자격을 묻지 않고 찾아오는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는 건 기만이라 생각하지만, 사람들을 진정으로 묶어주는 것은 고통이라고.


사람들을 진정으로 묶어주는 고통의 파괴력은 곧 연민이라는 인간다움으로 연결될 것이다. 장강명은 도스토옙스키를 그의 작품 속에서 (이번 작품에도 마찬가지로) 자주 소환하여 무신론과 허무주의의 연장선에서 인물의 부정적인 내면을 궤변 식으로 토로하곤 하는데, 고통과 연민은 도스토옙스키가 모든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코어에 해당된다고 보는 내게 이 문장은 참 마음에 들었다. 무신론과 허무주의의 겉옷을 입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마음을 마침내 읽어낸 것 같아서, 내가 사랑하는 도스토옙스키를 이제야 제대로 이해해 준 것 같아서 감사함도 느꼈다.


이 세상 모든 남편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교모세포종 2차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 중인 김새섬 그믐 대표가 완치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현대문학 

#김영웅의책과일상 


* 장강명 읽기

1. 책 한번 써봅시다: https://rtmodel.tistory.com/1256 

2. 먼저 온 미래: https://rtmodel.tistory.com/2023

3. 재수사: https://rtmodel.tistory.com/2220

4. 서성이다: https://rtmodel.tistory.com/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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