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아닌 질문으로 깊고 풍성한 해석을
송민원 저,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를 읽고
이 책은 답을 얻기 위한 책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책이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의 패러디인 이 책의 제목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는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저자 송민원의 낯설게 읽기, 혹은 다르게 읽기, 혹은 풍성하게 읽기, 혹은 삐딱하게 읽기의 관점이 잘 드러난 것이다. 신학교에 발을 디딘 적도 없는 아마추어 평신도 신학도인 나는 지난 10년간 성경신학 관점에서 써진 수십 권의 신학책들을 읽었다. 또한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정회원이자 한 명의 그리스도인 생물학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특별히 창세기 해석에 관한 책들은 더 많이 접했다. 과학과 신학 모두의 명예를 심각하게 실추시킨 창조과학자들의 주놀이터가 창세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창세기 해석 중 일부는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성경을 정답기록지로 읽고 또 읽기를 원하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신념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창세기 해석이 늘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이 이전보다 좀 더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지 않냐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성경은 의외로 빈틈이 많을뿐더러 우리들이 알고 있는 성경에 대한 이해는 성경 원문에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라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주류 신학자들의 전통적인 (어쩌면 보수적인) 해석에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하고 흥미로웠으며, 더욱더 깊고 풍성한 창세기 읽기를 할 수 있게 되어 반가웠다.
이 책에서는 창세기 여러 본문들에 질문을 던지면서 전통적인 수직적 읽기와 비교하여 많은 독자들이 접해보지 못했을 수평적 읽기를 소개한다. 수직적 읽기는 하나님과 땅과 인간의 수직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이 하나님 명령을 잘 지켰는지 그러지 못했는지에 대한 주제들이 포함된다. 하나님께 반역한 인간의 교만은 죄로 규정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인간의 겸손은 모든 인간에게 요구되는 덕목으로 규정된다. 반면, 수평적 읽기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창조세계의 관계에 더 주목한다. 우리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 피조물들과의 관계에서 우리에겐 어떤 책임과 역할이 있는지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두 가지 읽기 중 어느 것 하나가 옳고 틀린 건 아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둘 다 병행하여 성경을 읽어나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신앙인의 자세일 것이다.
저자 송민원은 이러한 두 가지 읽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창세기 본문 6군데를 대표적으로 소개한다. 창세기 1-3장으로부터 '인간은 왜 창조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창세기 3-5장으로부터 '죄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소개하고, 창세기 6-9장으로부터 '홍수는 왜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창세기 10-11장으로부터는 '바벨탑은 왜 무너졌는가'라는 질문을, 창세기 18-19장으로부터는 '소돔과 고모라는 왜 멸망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수평적 읽기의 필요성과 적법성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수직적 읽기의 사각지대를 비추며 그동안 모호하거나 모른 체 덮어두었던, 혹은 질문조차 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발굴하여 기존의 창세기 해석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한다. 그리고 모든 본문을 대할 때 텍스트뿐 아니라 콘텍스트, 그리고 그것들을 읽는 능동적 주체인 나 자신까지 돌아보며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평면적이 아닌 입체적으로 읽도록 요구하며 또 그렇게 시전을 해 보인다. 우리는 모두 다 성경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빈틈 속으로 파고들어 상상력을 발휘하고 앞뒤 문맥과 역사적 배경과 저자의 의도 등을 파악하여 많은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저자가 알려준 세 가지 잣대, 즉 텍스트, 콘텍스트, 나 자신을 살펴보며 성경을 읽어나간다면 바르고 건강한 성경 읽기를 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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