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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woong Kim님의 서재
  • 내가 있는 곳
  • 줌파 라히리
  • 12,150원 (10%670)
  • 2019-03-15
  • : 2,061

정착과 떠남의 경계에서


줌파 라히리 저, '내가 있는 곳'을 읽고


줌파 라히리가 미국을 떠나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어로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는 삶을 살던 시절 썼던 세 번째 책이다. 첫 책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와 두 번째 책 '책이 입은 옷'이 산문집이었다면, 이 책 '내가 있는 곳'은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목소리는 한층 더 뒤로 물러나 있다. 이탈리아어에 조금 자신이 붙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소설가로서 이탈리아어 소설 한 편을 꼭 써보고 싶기 때문이었을까? 형식은 달라졌고, 화자 뒤에 숨어 목소리를 아꼈지만, 세 번째 책인 이 소설에서도 앞의 두 산문에서 보였던 존재에 대한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은 그대로 이어진다.


이 책은 46개의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묘사와 서사를 동원해 들려주는 작품이다. 각 꼭지의 제목만 봐도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제목이 '내가 있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저자는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일상을 이루는 모든 곳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어떤 감정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다. 그 어디를 가도 온전히 정착할 수 없고, 동시에 늘 떠날 준비를 해야만 하는 자신의 존재론적 불안감을 여러 평이한 문장들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마치 화자가 처한 상황이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 나아가 모든 인간이 처한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나는 45번째 꼭지에서 이 책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보았다. '아무 데서도'라는 제목의 꼭지이다. 화자는 다음과 같이 쓴다.


"방향 잃은, 길 잃은, 당황한, 어긋난, 표류하는, 혼란스러운, 어지러운, 허둥지둥 대는, 뿌리 뽑힌, 갈팡질팡하는. 이런 단어의 관계 속에 나는 다시 처했다. 바로 이곳이 내가 사는 곳, 날 세상에 내려놓는 말들이다."


조금만 진지하면 모든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여러 군데에서 보여줌으로써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기법이 의외로 신선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고, 평이하지만 결코 평이하지 않은 인간의 존재, 그것이 가진 원초적인 불안을 이렇게 조명할 수 있다는 게 아름답게 느껴졌다. 언제 어디서나 정착과 떠남의 경계에 서서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다. 


#마음산책 

#김영웅의책과일상 


* 줌파 라히리 읽기

1.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https://rtmodel.tistory.com/2035

2. 책이 입은 옷: https://rtmodel.tistory.com/2055

3. 내가 있는 곳: https://rtmodel.tistory.com/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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