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플랜, 컴플리케이티드 휴먼 네이처
스콧 스미스 저, ‘심플 플랜’을 읽고
결국 심플 플랜은 심플하지 않았다. 플랜이 아무리 심플할지라도 그것을 실행하는 주체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편소설의 방점은 플랜이 아닌 플래너, 즉 인간에 있다. 플랜이 아무리 심플해도 절대 심플하게 처리할 수 없는 존재, 인간 말이다. '심플'은 '컴플리케이티드'를 가리키고, '플랜'은 플래너인 '인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제목, '심플 플랜'은 '컴플리케이티드 휴먼 네이처'라고 나는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한 시골 마을, 한 해의 마지막 날, 행크라는 이름의 화자는 자신의 친형과 형의 친구, 이렇게 셋이서 함께 우연히 추락한 경비행기를 발견하게 된다. 조종사는 이미 죽어 까마귀에게 눈알을 파 먹힌 상태였고, 바닥에 놓인 더플백 안에는 사백만 달러가 넘는 현금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라 하지만 평상시에는 이성적이기보다는 습관을 쫓아 살아가는 동물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약간의 스크래치를 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인간이 가장 이성적인 상황은 뭔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잘못된 일을 수습하려고 할 때가 아닐까 싶다. 평소에는 존재하는지조차 의식되지 않던 머리가 활발하게 돌아가는 순간, 우린 자신이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제삼자의 눈으로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가끔 바보처럼 자신이 똑똑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습관을 쫓아 살아간다는 건 다분히 감정에 이끌리는 생활 패턴을 가리킨다. 늘 해오던 대로, 편리한 대로, 쉬운 길로, 그것이 정의로운지 옳은지 이타적인지 도덕적인지에 대한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자신의 유익을 더하는 방향으로만 살아가는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방식 말이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어떤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서게 될 때가 있는데, 그 생활 패턴은 지나친 탐욕으로 드러나게 되고 인간은 실수랄까 범죄랄까 하는 행동을 종종 하게 되는데, 나는 바로 이때가 이성이 최고조로 활동하게 되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이성은 일을 벌이기 전이 아닌 이미 벌어진 일을 처리하는 데 더 활발하게 사용되곤 하는 것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인 이 작품을 가득가득 메우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유익, 탐욕이 유일한 목적이 되어 계획을 계속 수정해 나가며 일을 눈덩이처럼 부풀리게 되는 이야기. 그 과정 중에 아홉 명이라는 적지 않은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게 되는 스릴 넘치는 이야기. 놀라운 건 그 살인조차 '어쩔 수 없었다'라는 합리화를 하며 그다지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만의 이기적인 목적을 완벽히 성취하기 위해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읽을 때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주인공인 화자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 그 심리 변화로 인한 행동의 변화, 그리고 그 행동의 변화로 인해 빚어지는 돌발적인 상황들을 수습해 나가는 일련의 모습들일 것이다.
플랜이 아무리 심플해도 절대 심플하게 처리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탐욕 때문일 것이다. 탐욕은 왜곡시키는 힘이 있다. 그것에 의해 객관성은 증발되고, 이성 대신 감정이 더욱 우세하게 되며, 범죄에 대범해지게 되며, 급기야 모든 이성을 총동원하여 합리화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인간 심리의 변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고 있으면 나도 우리도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기도 한다. 언제나 섬뜩함의 심연은 타자가 아닌 자기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본성을 자각할 때이지 않은가. 비록 벽돌책이지만 페이지터너인 이 책을 나는 휴가 때나 휴일에 꼭 손에 들고 읽어보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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