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와 작품을 듣다
한강 저, ‘빛과 실’을 읽고
손바닥 만한 크기에 백육십 페이지 남짓 되는, 여백도 많아 왠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읽으며 그 공간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 이 책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과 소감, 미발표된 여러 편의 시, 산문, 일기들을 담고 있다. 한강 작가의 주요 작품만 읽어본 독자로서 함부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한강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진지한 적적함과 읊조리는 듯한 농밀한 텍스트들은 소설이 아닌 산문에서도 여전했다.
한강 작가 특유의 문체를 맛보는 것만 해도 즐거운 독서였다. 그러나 내가 주의 깊게 읽었던 부분은 수상 강연문이었다. 작가가 직접 말해주는 여러 작품들 (‘채식주의자’부터 ‘작별하지 않는다’까지)의 해제랄까, 탄생 배경이랄까, 작품 이면에 깃든 질문들이랄까 하는 내밀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장편소설이었던 ‘채식주의자‘부터 그녀는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여전히 이 소설은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네 번째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갔다고 한다.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 힘을 다해 기어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을 쓰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섯 번째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한강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며 다음과 같이 묻고 싶었다고 한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여섯 번째 장편소설은 알다시피 ‘소년이 온다’였다. 한강 작가는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직후까지 광주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광주 학살을 시작으로 여러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그녀는 이십 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 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학살에 관한 자료들을 읽을수록 그녀는 이 질문들에 답하는 게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는데 그건 그녀가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상실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랬다. 그러던 어느 날, 1980년 광주에서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고 위에 적은 두 개의 질문을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소설의 방향도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덕분에 회자되었던 유명한 질문이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한강 작가는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음을,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리고 짙은 어두움 가운데에만 있던 그녀는 생명의 빛을 보기 시작한다. 인간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도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동호는 그러므로 소설의 제목 ‘소년이 온다’에서처럼 과거에 죽은 혼으로 현재를 향해 걸어와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걸어와 과거가 현재가 되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일은 시공을 초월하여 계속해서 현재진행형일 수 있는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실제로 한강 작가가 꾼 꿈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라고 한다. 7년에 걸쳐 쓰인 이 작품 속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다. 한강 작가가 묘사한 정심에 대한 문장들에 나는 줄을 그었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은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25페이지에서 발췌)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한강 작가는 다음의 두 질문이 자신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다고 한다.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그녀의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고 한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그러다가 최근에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것이다. 나는 ‘작별하지 않는다’ 중 ‘작가의 말’ 속에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는 문장을 기억한다. 나 역시 정심의 삶을 사랑으로 읽어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수십 년간 그녀가 칠순이 넘어 치매에 걸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작별하지 않고 고군분투했던 삶을 사랑으로 읽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짧은 해제를 읽고 마음이 묵직하면서도 감동이 되었다. 그 감동은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증폭되었다.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폭력의 반대편인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문학을 위한 이 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34-35페이지에서 발췌)
고통과 사랑, 이 두 단어가 남는다. 인간은 인간스러울 수도 있지만 인간다울 수도 있다. 나는 고통스러운 세계가 가진 아름다운 면을 놓지 않고 싶다. 포기하고 않고 작별하지 않고 싶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싶다. 이것은 한강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자 한강을 읽은 자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에크리
#김영웅의책과일상
* 한강 읽기
1. 채식주의자: https://rtmodel.tistory.com/362
2. 소년이 온다: https://rtmodel.tistory.com/791
3. 작별하지 않는다: https://rtmodel.tistory.com/1360
4. 희랍어 시간: https://rtmodel.tistory.com/1409
5. 흰: https://rtmodel.tistory.com/1886
6. 빛과 실: https://rtmodel.tistory.com/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