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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러 삶의 의미
  • 알프레드 아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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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5
  • : 1,479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들러의 사상을 네 가지 단어로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열등, 극복, 우월, 공동체

다시 말해 아들러는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누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곧 ‘사실’로 보지 않고 자신만의 ‘해석’으로 본다. 그것은 각자가 가진 열등한 신체 기관과, 자신이 처한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그 해석을 뛰어넘으려면 ‘공동체에 속함’이 필요하다. 즉 열등감을 완화시켜내고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공동체라는 말이다.

갑작스레 열등에서 공동체로 뛰긴 했지만 아들러가 주장하는 바는 이와 같이 명약관화하다. 결국은 열등을 극복하는 기제는 공동체에 속하고, 공동체를 이롭게 하려는 ‘어떠한 추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남들보다 비교적 열등한 부분을 가질 수밖에 없는 모든 인간에게는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는 우월의 추구와도 맞닿아 있는데, 이것 또한 공동체성에 근거하고 있다. 우월이 남들보다 높아지거나 타인을 짓밟는 행동을 한다거나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아들러는 역설한다. 그는 철저하게 공동체성에 기반하여 자신의 개인심리학을 펼쳐나간다.

이는 매우 형이상학적이기도 한데, 그는 그것을 별로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형이상학으로 수렴되지 않는 과학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잠재적 비판자의 입을 막으려 한다. 물론 필자는 이러한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일견 일리가 있다고 본다. 과학이 밝혀낸 어떠한 사실은 반드시 사람의 ‘해석’을 따라 살아 움직여 어떠한 세계관을 주창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체주의를 지지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분이 있다면 아들러를 잘못 해석했다고 말해드리고 싶다. 아들러가 공동체를 강조한 이유는 인간이 홀로 살 수 없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즉 여기서 공동체는 하나의 몸으로 움직이는 유기적인 전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타인을 말한 것이다.

타인의 필요성을 주장한 아들러, 곧 해체될 수 없는 ‘개인’은 해체될 수 없는 또 다른 ‘개인’이 필요하다 말한 그는 한 인간을 공동체에서 읽어내야 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매우 신선한 시도이며, 낯선 접근 방법이다. 개인을 독립된, 홀로 있는 존재로 보지 않고 그에게 걸쳐 있는 수많은 공동체의 그물망과 배경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탈개인화 사회를 겪는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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