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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책임감을 찾아서
smjilu 2019/04/2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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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인원
나이절 섀드볼트.로저 햄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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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0
: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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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독자에게 처음 안겨주는 놀라운 사실은 이렇다. 털이 없는, 소위 벌거벗은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언어를 획득하기 이전에 도구를 사용했다는 정보 말이다. 무엇보다 호모 사피엔스는 그 외부의 물건으로 지구 전체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겐 어찌 보면 익숙한 일상일 수 있다. 그러나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의 변화에 반응하는 수많은 종들과는 달리, 자연을 변화시키고 인공물의 세계를 만들고 진화라는 것에 직접 참여한다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매우 낯설게 느낄 것이다.
우리, 즉 호모 사피엔스는 도구를 사용하기 위한 뇌와 엄지손가락, 즉 외부의 물건을 조작하는 능력을 다른 종과 달리 발달시켰다. 다른 종과 달리 생존을 아주 특이한 곳에 걸었다. 때문에 생긴 선순환은 매우 강력해졌다. 영리한 뇌를 사용함으로써 먹고 남을 만한 식량을 얻었고, 남은 에너지로 더 많은 에너지를 원하는 더 영리한 뇌를 발달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러한 뇌의 발달로 인간은 생물학을 포함하고, 넘어서 사회학을 발전시켰다. 선순환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사회적 협력의 탄생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사는 지리적 공간은 더욱 복잡하게 변화했고, 이 두 개의 선순환이 인간이라는 종을 현재의 모습까지 진화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진화의 측면에서 보든, 사회학적 면에서 보든 '도구'는 인류의 발전에 있어 매우 놀라운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사실 공생관계나 공진화라는 말을 쓰려면 생물 개체의 모임 간의 이야기여야 하지만, 인류가 만들어낸 도구, 특별히 그중에서 '디지털 도구'는 우리의 삶을 다시 재편할 정도로 '살아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이것은 생명력의 정의 혹은 자기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냐, 라는 철학적 논쟁을 부르는 주문이 아니다. 단지 그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필자가 강조하고 함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류는 자신의 생명력을 마치 마법사처럼 주변의 도구에 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이 주장하는 바, 곧 '도구가 우리를 발명했다'는 주장이 그리 과장된 것은 아니다. 이 책 <디지털 유인원>은 다른 어떤 요인보다, 인류의 진화에 있어 도구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이는 필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4차 산업 혁명과 맞닿아 있는 주장일 것이다. 점점 복잡해져 가는 도구와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사물을 잇는 도구 망들이 사피엔스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저자들이 주먹도끼에서 느낀 기시감을 그리 복잡한 직관력을 발휘하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디지털 유인원>은 또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생물학이 전달하는 유전 정보보다 훨씬 많은 규칙과 정보를 문화 속에 넣어두는 능력이 사피엔스에겐 있기 때문이다. 학습된, 도구로 개척하거나 만들어 낸 인공물, 그것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는 사회체제 같은 것이든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도 없는 정보와 규율을 학습하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그 문화조차 인류가 발명한 도구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명한 현실이다. 이러한 시간을 따라 일어나는 대규모 정보 축적 사건들은 인류를 변화시키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당당히 이렇게 선포한다. '우리는 진화가 일어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몇몇 분야에서는 명백히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는 도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기계 혹은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저자들은 그것에 그리 호들갑 떨지 않는다. 인간은 여전히 기계보다 잘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는 그들을 - 그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 만들 수 있는 지능이 있으며, 둘째로는 도구의 범주에 들어가는 그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과 능력을 확대할 줄 안다. 그러니 저자들은 아직 이르다 말한다. 무엇을 이르다 말하는가. '자기'를 위하여 일하는 도구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말이다. 다만 그들은 우리에게 주문한다. 기계를 통제할 줄 알라고.
이 서평을 마치기 전에 저자들이 주목하는 현대 도구의 특징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이들은 '사회적 기계'를 언급하며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가지고 우리의 사회성을 돕고, 창발성을 돕는 도구들을 주의한다. 이것이 바로 모라벡의 역설(인간이 수행하기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기계를 만들기는 쉽지만, 인간이 쉽게 여기는 일상의 일들을 기계를 제작하기는 어렵다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즉 주먹도끼부터 현재의 스마트폰까지 도구는 인류가 직접 하지 못하는 일을 하도록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도구가 지금 인류의 사회성 확장에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필자는 저자들이 인간은 자신이 만든 도구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도를 지닌 채 본서를 내놓았다고 본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현재의 도구는 지식을 가지고, 인간에게 조언을 제공하고, 인간과 협력하는 등 인간이 해 오던 역할까지 맡고 있'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인 변화를 어느 때보다 복잡하게 만들어가는 도구를 손에 쥔 종, 심지어 모든 종의 진화에 손을 댈 수 있는 능력을 얻어가는 사피엔스에게는 당연히 어느 때보다 막중한 책임감이 주어진다. 그러니 우리는 디지털 유인원에서 남아있어선 안 된다. 진화를 조망하고 세대를 뛰어넘는 속도를 지닌 도구를 갖춘 사피엔스는 이제 자신의 도구에게 명령을 내려야 한다. 우리를 좀 더 나은 존재로 진화시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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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즉 호모 사피엔스는 도구를 사용하기 위한 뇌와 엄지손가락, 즉 외부의 물건을 조작하는 능력을 다른 종과 달리 발달시켰다. 다른 종과 달리 생존을 아주 특이한 곳에 걸었다. 때문에 생긴 선순환은 매우 강력해졌다. 영리한 뇌를 사용함으로써 먹고 남을 만한 식량을 얻었고, 남은 에너지로 더 많은 에너지를 원하는 더 영리한 뇌를 발달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러한 뇌의 발달로 인간은 생물학을 포함하고, 넘어서 사회학을 발전시켰다. 선순환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사회적 협력의 탄생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사는 지리적 공간은 더욱 복잡하게 변화했고, 이 두 개의 선순환이 인간이라는 종을 현재의 모습까지 진화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진화의 측면에서 보든, 사회학적 면에서 보든 '도구'는 인류의 발전에 있어 매우 놀라운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사실 공생관계나 공진화라는 말을 쓰려면 생물 개체의 모임 간의 이야기여야 하지만, 인류가 만들어낸 도구, 특별히 그중에서 '디지털 도구'는 우리의 삶을 다시 재편할 정도로 '살아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이것은 생명력의 정의 혹은 자기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냐, 라는 철학적 논쟁을 부르는 주문이 아니다. 단지 그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필자가 강조하고 함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류는 자신의 생명력을 마치 마법사처럼 주변의 도구에 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이 주장하는 바, 곧 '도구가 우리를 발명했다'는 주장이 그리 과장된 것은 아니다. 이 책 <디지털 유인원>은 다른 어떤 요인보다, 인류의 진화에 있어 도구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이는 필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4차 산업 혁명과 맞닿아 있는 주장일 것이다. 점점 복잡해져 가는 도구와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사물을 잇는 도구 망들이 사피엔스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저자들이 주먹도끼에서 느낀 기시감을 그리 복잡한 직관력을 발휘하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디지털 유인원>은 또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생물학이 전달하는 유전 정보보다 훨씬 많은 규칙과 정보를 문화 속에 넣어두는 능력이 사피엔스에겐 있기 때문이다. 학습된, 도구로 개척하거나 만들어 낸 인공물, 그것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는 사회체제 같은 것이든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도 없는 정보와 규율을 학습하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그 문화조차 인류가 발명한 도구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명한 현실이다. 이러한 시간을 따라 일어나는 대규모 정보 축적 사건들은 인류를 변화시키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당당히 이렇게 선포한다. '우리는 진화가 일어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몇몇 분야에서는 명백히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는 도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기계 혹은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저자들은 그것에 그리 호들갑 떨지 않는다. 인간은 여전히 기계보다 잘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는 그들을 - 그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 만들 수 있는 지능이 있으며, 둘째로는 도구의 범주에 들어가는 그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과 능력을 확대할 줄 안다. 그러니 저자들은 아직 이르다 말한다. 무엇을 이르다 말하는가. '자기'를 위하여 일하는 도구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말이다. 다만 그들은 우리에게 주문한다. 기계를 통제할 줄 알라고.
이 서평을 마치기 전에 저자들이 주목하는 현대 도구의 특징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이들은 '사회적 기계'를 언급하며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가지고 우리의 사회성을 돕고, 창발성을 돕는 도구들을 주의한다. 이것이 바로 모라벡의 역설(인간이 수행하기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기계를 만들기는 쉽지만, 인간이 쉽게 여기는 일상의 일들을 기계를 제작하기는 어렵다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즉 주먹도끼부터 현재의 스마트폰까지 도구는 인류가 직접 하지 못하는 일을 하도록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도구가 지금 인류의 사회성 확장에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필자는 저자들이 인간은 자신이 만든 도구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도를 지닌 채 본서를 내놓았다고 본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현재의 도구는 지식을 가지고, 인간에게 조언을 제공하고, 인간과 협력하는 등 인간이 해 오던 역할까지 맡고 있'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인 변화를 어느 때보다 복잡하게 만들어가는 도구를 손에 쥔 종, 심지어 모든 종의 진화에 손을 댈 수 있는 능력을 얻어가는 사피엔스에게는 당연히 어느 때보다 막중한 책임감이 주어진다. 그러니 우리는 디지털 유인원에서 남아있어선 안 된다. 진화를 조망하고 세대를 뛰어넘는 속도를 지닌 도구를 갖춘 사피엔스는 이제 자신의 도구에게 명령을 내려야 한다. 우리를 좀 더 나은 존재로 진화시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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