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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필자는 극단에 치우쳤다 하지 않고, 극단에 '선' 자들이라고 제목을 붙였을까? 그것은 이 책이 말하는 극단주의의 정의와 맞닿아 있다. 저자 김태형은 극단주의가 오용되었다는 주장을 <들어가는 글>에 붙여 자신이 앞으로 어떤 내용을 쓸지 말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극단주의에 관한 미국의 심리학 이론은 친자본, 친 제국주의, 어용 이론이다.'
이 책은 필자가 보기에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토막은 '극단주의의 예', 가운데 토막은 '극단주의를 말하는 미국 심리학의 태도 비판' 그리고 마지막 토막은 '극단주의의 발생기전과 예방'이다.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제외한 가운데 부분이, 전체 250쪽이 넘는 책의 거의 반절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저자는 이 책에서 극단주의를 비판하는 데 방점을 찍은 듯하다.
그럼 이제 그가 주장하는 내용을 살펴보자. 저자는 집단 극단화 이론에서 '극단'을 강도 혹은 양과 관련된 개념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곧 질을 배제한, 즉 내용을 빼버린 극단 개념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존의 신념이 강화되거나 다양성이 사라지고 동질성이 높아지는 것 자체를 극단화로 볼 수 없다는 내용으로서 촛불 혁명이나 미투 운동을 극단주의로 매도할 수 없다고 예를 들기도 한다. 쉽게 말해 현재 집단 극단화 이론은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이론이라는 뜻이다.
또한 이러한 이론적 배경에 깔려 있는 미국 심리학의 인간관을 비판하기도 한다. "인간이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존재 혹은 선동꾼들에게 놀아나는 존재"로 보는 집단 극단화 이론을 어용 이론으로 보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간관은 인간을 불신하게 만들고, 인간 혐오에 빠지게 만들 영향이 크며, 군중을 매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의하면 사람은 인지-행동주의 심리학이 말하는 것처럼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각각의 고유한 개인사를 따라 복잡한 감정과 동기에 맞추어 정보를 능동적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는 심리 환원주의를 비판하는 셈이다. 어떠한 사회적 현상을 인간의 심리현상으로 설명해낼 수 있다는 잘못된 시각을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저자 김태형이 주장하는 극단주의란 무엇일까? 그는 우선 3가지 요소를 뽑는다. 배타성, 광신, 강요. 그리하여 "광신에 사로잡혀 세상을 배타적으로 대하고 자신의 믿음을 타인들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혐오'를 덧붙이는 데, 이 네 가지가 극단주의를 정의 내리는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다. 무시당하거나 굴욕을 당하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이 사회를 비판하고, 인간 혐오를 만연하게 만드는 자본가들의 심리학을 비판한다. 민중의 계급적 분노를 엉뚱한 대상에게 향하도록 만드는 것, 곧 희생양 만들기'를 통해 군중을 극단주의로 매도한다는 말이다. 또한 이 행위는 실제로 극단주의로 향하게 만들어 혐오를 양산하고 내가 당한 학대 경험을 나보다 약한 자에게 전가하게 한다.
저자는 여기서 우리에게 요청한다. 자신이 당한 혐오 경험을 나보다 약한 자에게 하지 말고, 그것을 하게 만든 사회의 시스템을 보라고 말이다. 군중이 단결하여서 병적인 세상에 저항할 줄 알아야 진정으로 극단주의를 예방하고 사회를 물들이는 혐오 사건들을 단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의 주장을 세 개 정도로 요약하면, 기층 민주주의 확립, 자본주의 제도 개혁, 국가의 국민 차별 대우 중단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사회 심리학에서 시작했던 김태형의 글은 사회학으로 마무리 지어지는 듯한데, 그가 주장했던 것과 상통한다. 극단주의는 심리학으로 단순히 풀어낼 수 없는, 즉 각 개인에게 책임 전가할 문제가 아니다. 극단주의란 사회 그 자체를 이끌어나가는 개념과 이데올로기를 수정하지 않고는 사라지지 않을 망령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