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독서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책.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어서 마음이 급해진다. 웬지 책장 정리도 해야될 것 같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세상에 읽을 책이 늘어난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래도 허겁지겁 읽어치우기 보다는 하나씩 꼭꼭 씹고 되새기며 읽고 싶다. 책 한 권에서 단 하나라도 배우고 기억하기 위해서.
덧붙여 이 책을 읽고 나면, 읽는 속도로는 절대 따라가지도 못 할 속도로 책을 사제끼는 나의 소유욕을 정당화할 수 있는 변명(?)을 찾을 수 있고, 책장 가득한 새 책들의 시선이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다. 에휴.
굳이 철학까지 가지 않더라도 책을 읽는 일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추상 근육‘을 쓰는 행위다. 여러분이 책을 읽을 때에만 느끼는 피곤함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인간에게만 주어진 이 능력을 쓰는 데에 익숙해질수록 책을 읽는 일이 점점 더 즐거워질 것이다. 머릿속에 창조한 세계가 점점 더 풍요로워지고, 지식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라지며, 자신과 책의 의견을 교환하는 폭이 넓어진다. 이 능력은 한 번 획득하면 쉽게 퇴보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책은 가장 지속성이 높은 유희 활동이기도 하다.- P55
또한 어렵지만 좋다고 평가되는 책에 도전하면서 이게 왜 좋은지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과정도 진행중이다. 아직 책을 읽을 수 있는 수많은 날이 남아있고, 그 시간 동안 더 좋은 책을 깊이 향유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에게 좋은 기준을 세울 것이고, 이건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과정이 아니다. 인생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P124
나의 방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책장을 바라볼 때, 수천 년 전의 인간이 남긴 말부터 지금의 인간이 그 말을 해석한 책까지 있는 광경을 바라볼 때, 나는 인간이란 죽으며 한낱 활자만을 남길 수 있는 존재임을, 동시에 그 활자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임을 상기한다. 책에 대한 소유욕은 그래서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자 애정의 발로다. 구체적인 하나의 인간에 대한 소유욕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의 정신성에 대한 소유욕인 셈이다.- P137
그렇다면 정신성을 소유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소유는, 언제든 내가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언제든 그 세계가 나를 재구성함을 허락하는 행위다. 여기서의 세계는 단순히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이 파악해온 역사 전체, 탐구해온 우주 전체, 서로 다른 대륙에서 벌어진 사건들, 그 사건을 체험한 서로 다른 기억 모두를 의미한다. 이 모든 기억과 사건과 원리가 세상을 굴려갔음을 잊지 않고, 언제든 나를 침범할 수 있도록 늘 마음을 열어두는 것이다. 책에서 필요한 정보만 파악하고 말 거라면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사는 내내 책의 영향을 허락할 셈이라면 가지고 있는 수밖에는 없다. 가지고 있다면, 읽었던 책의 책등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어떤 메시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홀로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 데에 책만큼 좋은 수단은 없다. 그저 책장에서 책을 뽑아 펼치면 된다.- P138
진부한 얘기지만, 많이 읽고 적게 읽고보다 중요한 것은 책을 얼마나 ‘충실하게‘ 읽었는가 하는 것이다. 천 권을 읽어도 읽는 내내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면 슬픈 일이다. 천 권을 읽으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셨을 텐데, 이왕 오래 할 거 좀 즐겁게 하시지. 책에 집중하고, 책과 대화를 나누고, 책에게 질문하고, 반박하고, 때로 귀퉁이를 접고,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하는 독서가 조금 더 충실한 독서일 것이다.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하는 것이 귀찮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책에게 말을 건다는 게 중요하다. 말을 많이 걸면, 책은 꽤 믿을 만한 인생의 친구가 되어 준다. - P161
내가 살면서 책에서 얻은 가장 큰 기쁨의 순간들은 좋은 책을 천천히 읽는 시간들에 있었다.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고, 감정에 깊이 공감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위로받고,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고, 작가의 농담에 껄껄 웃고, 이런 순간들을 속독으로도 만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 P164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한다. 책이라는 좋은 친구를 다들 곁에 두고 살기를 바란다. 책을 읽음으로써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추상적인 사고를 하고, 몰랐던 것을 배우고, 혼자 있는 시간을 풍요롭게 보내길 바란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새로운 관점을 접하는 계기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읽으면 읽을수록 일을 책이 까마득히 많아지는 그 역설을 공감하길 바란다. 어떤 계기로 읽게 되든, 책은 일단 친해지기만 한다면 평생 배신하지 않는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P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