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연인은 서로의 광기를 일면 참아주고 있어.- P89
하지만 스물일곱의 어느 날 나는 어떤 애한테 심하게 반해버렸다. 걔도 나한테 반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반했다고 해도 나만큼 심하게 반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짝사랑인의 심정을체감했다.
코가 깨진 기분으로 서점에 갔다. 짝사랑인은 가만히 있으면 자신의 서러운 사랑 얘기에 매몰되어버리므로, 재빨리 세상의 다른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의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스스로 마음을다스릴 줄 아는 나의 지혜에 거듭 감탄하며 신중히 책을 골랐다.
막 구매한 좋은 책 한 권을 들고 서점 구석 의자에 앉았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신작이었다. 호기롭게 읽기 시작했다.
한 쪽도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5분도 안 돼서 나는 책을 덮었다.
좆됐다고 생각했다.- P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