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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더커버
  • 아마릴리스 폭스
  • 13,500원 (10%750)
  • 2020-07-10
  • : 147

실제로 단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할리우드 영화로나 미드로 제일 자주 접하게 되는 직업이 CIA 등 정보요원이 아닐까 싶다. 친숙하면서도 너무나 이질적이고 먼 존재들. 나에게는 마블 캐릭터 마냥, 영화 속 비현실 세계에만 있고 현실에 없는 캐릭터처럼 CIA 요원도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공상의 직업, 공상의 인물처럼. 하지만 CIA는 실제로 존재하고, CIA 요원들은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임무 수행하다가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죽이기도 해야 하는.



이 책은 실제 CIA에 몸담았던 전직 요원, 아마릴리스 폭스가 쓴 책이다. 실제로 어떻게 CIA 요원으로 섭외되고, 어떤 시험을 치러야 하며, 미국 어딘가에 있는 영화 세트장 같은 곳에서 실제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레벨에 따라 맡게 되는 임무가 달라진다는 것이 상세히 나와있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 CIA에서 CIA에 대해 너무 상세한 정보를 담았다며 출판을 막으려 했다던데 그럴 만도 하다. CIA 요원은 미국 일상에 스며 있으며, 뭔가 재능을 보이는 사람에게 접근해 CIA 요원을 제의하고 시험을 치르게 한다. 본부에서 인턴 같은 활동도 하는데, 테러와 완전히 단절된 안전하고 실험실 같은 곳이지만 인턴으로 일하며 해야 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만은 않다. 육체적으로 힘이 든 것보다도, 도덕적 딜레마가 상당하다. (딜레마 때문에 많은 요원들이, 차갑고 나른한 관료주의적 태로를 취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릴리스 폭스가 쓴 『언더커버』는 단순히 사람들이 CIA에 대해 가질만한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또, 자신이 맡았던 임무와 업적을 떠벌리며 영웅담을 늘어놓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은, 어렸을 적 절친한 친구가 테러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갔던 동남아에서 우연에 우연이 겹쳐 비밀공작을 하고 아웅 산 수치 여사를 직접 만난 일,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경험했던 9.11 테러 사건 등등 요러 요인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그녀가 CIA 요원이 된 과정을 보여준다. 아마릴리스 폭스는 세상에 억압받는 사람을 위해, 또 아무 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테러범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CIA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정보요원은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일을 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임무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는 일이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함께 나고 자란 형제자매들에게,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도... 자신이 하는 일과 자기 자신을 속여야 한다.


적성이 맞으면 모를까, 정보요원은 필연적으로 자아가 분리되고 삶은 파편화된다. 그 속에서 갈등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born to be 정보요원이다. 보통 사람은,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없이 많은 딜레마에 부딪히고, 자기 실제의 삶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릴리스 폭스는 그 이야기를 담았다. 옳은 일을 위해, 미국을 위해, 테러에 무고하게 희생당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과 안위를 위해 정보요원이 되었지만 그녀는 딜레마를 느낀다.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이 떠나간 것도 힘들었지만, 그녀가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랑하는 딸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을 때였다. 저자가 가면을 쓰고 딸을 대할 때 어린 딸은 그녀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릴리스 폭스가 진심 어린, 자신의 가면을 놓고 무장해제된 채 가벼운 농담을 건네자 딸은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웃었다. 역시 아기는 본능적으로 아는 걸까. 상대방(특히 엄마)가 자신에게 진심인지, 아닌지를. 그래서 어쩌면 지금 분쟁을 하고 있는 국가와 국가, 종교와 종교, 민족과 민족들도 '진심'을 내보이면 서로 화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이 책에는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CIA 요원 섭외, 발탁, 실제 경험한 일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꽤나 자세하고 구체적이어서 CIA도 난감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자서전은 영화와는 다르게 실제적이며 현실이므로). 하지만 실제로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정보활동도 중요하지만, 저자 아마릴리스 폭스가 선택한 길인 '서로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싶다. 이건 속고 속일 때 가능한 일이 아닌 서로 진심을 내보일 때 가능한 일이다. 그녀가 난민촌을 돌며 수니파, 시아파 민병대원들에게 화해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 민병대원들이 흘린 눈물은 '상대방의 진심'이 아니면 결코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전직 CIA 요원의 흥미진진한 경험담,

그리고 그 속에 겪었던 인간적 고민과 갈등이 잘 담겨 있는 책이다.

그녀가 온전히 그녀만의 길을 선택한 것이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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