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은 아주 오래,수백만 년 동안 존재해왔습니다.몸은 수많은 세대의 연속입니다. 몸은 결코 죽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이 몸을 가벼이 여길 수 없습니다. 나의 몸은 나만의 몸이 아닙니다.이 몸을 과소평가할 수도 없습니다.나의 몸은 내 모든 조상들의 몸입니다.
나의 마음은 이 몸 안에 있습니다. 마음은 이 몸을 일으키고 이 몸은 마음을 일으킵니다.
이 몸에서 우주 생명의 온갖 경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나지도 죽지도 않는 정토와신의 왕국도 이 몸 안에 있습니다.나는 이 몸을 가벼이 여길 수 없습니다.몸은 우주의 모든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이 몸은 또한 우주의 아름다운 꽃입니다.나는 이 몸을 잘 돌보고 싶습니다. 나의 몸이 나에게 우주의 모든 신비와 경이를 환히 드러내주길 바랍니다.
나에게 후손이 있든 없든,이 몸은 다른 수많은 형상으로계속 이어질 것입니다.이 몸이 앞으로도세세생생을 아름답게이어가기를 발원합니다.
(틱낫한, 『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 64-65쪽)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언젠가 한 번 이상은 들어본 말일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불교의 어느 한 경전의 구절이라는 건 알지요. 유교국가로서 억불숭유 정책을 취했던 조선, 그래도 글 모르는 대부분의 백성들과 아녀자들도 이 구절은 외우고 외며 현생의 고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이 유명한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불교 경전 중 하나인 『반야심경』의 맨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 구절의 뜻은 이렇습니다. '갔네, 갔네, 건너갔네. 모두 건너가서 한없는 깨달음을 이루었네!(40쪽)'로 풀이할 수 있지요.
'갔네, 갔네, 건너갔네'어디를 건넜다는 걸까요?!강을 건넌, 피안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그리고 이 강을 건넌 자는 참 자유에 이른 지혜로운 자, 깨달은 자를 의미합니다.
『반야심경』은 많은 번역본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번역한 사람에 따라 『반야심경』의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겠죠. 언어는 인간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기 위한 특별한 도구이지만, 언어가 우리 인간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다 담을 수는 없습니다. 언어는 한계가 확실합니다. 언어가 오해를 낳기도 하고, 언어 속에 인간의 세상에 대한 편견이 스며있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신이 관계 맺는 세계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겪어 보지 못한 것, 생각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의 번역과 해석이 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베트남 스님, 틱낫한 스님이 『반야심경』을 새로 읽고 해석하신 책입니다. 불교 교리나 『반야심경』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스님의 해석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받아들이는 정도.
그래도 제가 아는 얕은 불교 지식과 사상에 비춰보면 스님의 해설은 꽤나 올바르고, 우리 시대에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책 중간중간에는 양자물리학 등 현대 최첨단 과학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현대의 과학은 이 세상에 생함과 소멸이 없고, 이것은 저것이며, 저것이 이것이며, 무엇이든 '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것들은 2,500여 년 전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은 것과 상통합니다.
/모든 현상은 연기의 산물입니다.이들은 분리된 자아가 없습니다.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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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당신은 다른 모든 것과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다른 모든 것이 존재하기에비로소 이 한 장의 종이가 존재합니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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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쓴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보다 『반야심경』에서 더 유명하고 중요한 구절. 바로 '공즉시색 색즉시공'입니다. 틱낫한 스님이 새롭게 해석하시는 이 책은 『반야심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석하시지만 제일 핵심은 '공즉시색 색즉시공'입니다. 진리는 진리라고 할 때 진리가 아니다, 이런 맥락이지요. 이 책에서 틱낫한 스님이 제일 공들여 설명하시는 부분은 <'공(空)은 비존재'가 아니다>입니다. 현재 우리가 서양 철학과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고 있고 또 물질로 이루어진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공(空)을 비존재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틱낫한 스님은 공은 전혀 '비존재'가 아니다,라고 설명하십니다. 존재, 비존재라는 이분법적 관점을 초월해야 한다고요. 또한 공(空) 사상은 '허무주의'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상, 즉 덧없음이라는 통찰은 그 무엇도 고정적이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지도 않는다는 깨달음입니다.(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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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나 물질은 오로지 어느 한 형태에서다른 형태의 에너지나 물질로 바뀔 수 있을 뿐입니다.작디작은 먼지 한 톨조차 결코 무가 될 수는 없습니다.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다.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다.'(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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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반야심경』의 핵심 나아가 불교 사상의 정수는 바로 이런 깨달음인 것 같습니다. 모든 건 변할 뿐 고정불변인 것은 없고, 모든 건 서로 관계를 맺고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요. 이 진리를 진실로 깨달으면, 고통도 불안도 두려움도 없는 열반의 세계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머리로는 알겠지만, 진심으로 깨닫지는 못하겠어요. 죽을 때까지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틱낫한 스님의 이 책만이 『반야심경』을 제대로 해석했다, 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말 자체가 『반야심경』의 핵심 내용과 배치되는 것이니까요. 그럼에도 현대 시각에서 『반야심경』을 잘 해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이해'가 녹아있으니까요. (현대 과학의 쾌거)
세상 만물은 모두 '관계'에서 생성되고 변화하고 소멸됩니다. 이번에 틱낫한 스님의 『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를 읽으며 2,500년 전의 분이신 석가모니의 통찰에 놀랐습니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맺어진다는 진리를 늘 마음에 새기며 티끌만큼이라도 조금 더 지혜롭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