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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게나인님의 서재
  • 스테이션 일레븐
  •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 14,220원 (10%790)
  • 2016-07-08
  • : 1,172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강의 치사율을 보이는 조지아 독감의 급속한 확산으로 인류의 99%가 죽고 문명이 붕괴된 세계를 그린 아포칼립스 소설이다. 혼돈과 절망이 가득하지만, 마냥 어둡고 혼탁하다기보다는 어둠 속에 어스름한 빛이 스며드는 풍경의 아름다움이 함께 느껴지는 이야기다.

 

문명 붕괴 직전에 명배우 아서는 연극 <리어왕>의 무대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이야기는 아서의 죽음을 전후한 상황과 폐허가 된 새로운 세상의 삶을 오가며 펼쳐진다. 다채로운 인간 군상이 등장해 문명 붕괴 전후의 삶과 선택을 보여준다, 주인공격인 인물들(커스틴, 지반, 미란다, 클라크, 타일러)은 모두 아서와 관련되어 있으며, 특히 문명 붕괴 후의 세계를 살아가야 할 유일한 세계로 인식할 수밖에 없게 된 커스틴과 타일러는 미란다가 만든 그래픽노블 <스테이션 일레븐>을 아서에게 선물받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함으로써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다.

 

아서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초반에 조지아 독감이 인류를 붕괴시키는 과정을 다급하게 스케치한 이후로는, 아서의 삶의 결정적 지점들과 문명 붕괴 후의 세계(특히 커스틴의 유랑극단을 중심으로)를 수시로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시간대가 자주 튀어서 이게 뭔가 싶지만, 결국 아서의 삶 혹은 선택과 이어진 캐릭터들이 대미에 직간접적으로 조우하는 과정까지 읽고 나면, 이야기가 얼마나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세번시티 공항에 불시착해 거기 잔류하게 된 클라크와 승객들이 직후의 상황을 판단하고 받아들여가는 챕터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모든 혼란과 절망이 시시각각 밀려오는 듯해 숨이 막히면서도, 거기서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사라진 이전 시대의 물건들로 박물관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숙연하기까지 하다.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붕괴된 세계를 떠도는 유랑극단의 멤버 커스틴이다. 이 당차고 유능한 소녀가 예언자와 대치하는 마지막 대목은 긴장감으로 쫄깃하다. 다만 예언자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클리셰에 가깝고 커스틴의 카리스마를 맞상대하기에 충분히 강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뜻하지 않게 주어진 파국과 절망 속에서 단순한 생존 그 너머를 바라본 이들의 선택과 행보가 전해주는 어스름한 희망이 위로를 안겨주는 소설이다. 여전히 그 불완전하고 정돈되지 않은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나가야 할 커스틴이 안쓰러우면서도 희망의 가능성을 선사하는 결말이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처절하고 아름다우며 매혹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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