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평은 해냄에듀 역사팀 '장바구니에서 꺼낸 신간' 서평 이벤트 제공 도서로 작성되었습니다.
유난히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몇 년 뒤에는 모두 타죽거나 얼어죽는 건 아닐까?" 막연했던 기후변화가 이제는 절실한 위협으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그때 한 권의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몰락의 대가』입니다. 명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농민 봉기의 원인이 급격한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물가 급등 때문이었다는 흥미로운 주장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저자 티모시 브룩은 캐나다 출신으로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은 저명한 경제사학자입니다.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의 책임 편집자이자, 이 시리즈 제5권 『곤경에 빠진 제국: 원명 시대의 중국』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민두기 선생의 논저를 영어로 번역해 소개한 장본인이기도 하죠.
미국 중국학계의 거장이 내놓는 이 과감한 주장은 흥미로운 기록에서 출발합니다. 1620년대와 1640년 초 크게 치솟은 물가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한 무명 학자가 "만력 연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라며 한탄했다는 기록입니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합니다.
만력 연간의 물가는 정말 안정적이었을까요? 저자는 정부 재정 문서부터 개인 회고록, 기행문까지 곳곳에 흩어진 물가 자료를 모두 수집해 분석합니다. 이것만으로도 경제사학의 중요한 성취라 할 만합니다.
다음으로 저자는 은의 유통과 글로벌 교역망이 중국 물가에 미친 영향을 살펴봅니다. 고등학교 동아시아사에서 배우는 내용이라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통념과 달리 갤리언(갈레온) 무역의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무역이 주로 사치품 위주여서 일반 물가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점을 실증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만력제 시기 물가 구조를 꼼꼼히 분석한 후, 저자는 본격적으로 기근 시기의 물가 데이터를 분석합니다. 지방지에 파편적으로 흩어진 기근 시기 물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평상시와 비교해 물가 상승 패턴을 읽어낸 부분이 이 책의 백미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명나라 멸망의 직접적 원인이 된 1640~1642년 사이의 기근을 집중 조명합니다. 숭정제 재위 기간 내내 불안정했던 물가 상황을 입증하고, 이 시기 기근과 물가 상승의 특수성을 검토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물가 변동에 미친 구체적 영향을 명확히 실증하지는 못한 채 책이 끝납니다.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지만 완전히 증명하지는 못한 느낌입니다. 아마 자료나 방법론 상의 한계에 부딪혔던 것 같습니다.
'몰락의 대가'라는 제목 번역도 낯섭니다. 원제의 'price'를 '대가'로 번역한 것 같은데, '대가'라는 말이 '무언가에 상응하는 급부'라는 의미로 쓰인다는 점을 보면, 이러한 번역은 내용과 부합하지도 않고 막연함만 전달하는 부적절한 번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기후변화가 과연 역사의 흐름을 바꿀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까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 명나라의 경험은 어떤 교훈을 줄까요?
역사는 단순히 정치적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라 환경과 경제, 사회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역사적 통찰을 제공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활용한 수업 아이디어>
1. 여러 역사 자료에서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보는 탐구 활동
날씨, 물가, 세금, 소작료 등 1차 사료에서 raw data를 추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해보는 고급 탐구 활동
2. 소빙기의 기상(기후) 이변과 기근 비교해보기
이 책의 소재인 명말의 대기근, 경신대기근, 유럽의 기근 등을 비교하여 발표하는 탐구 활동
3. 기후 변화가 정말 물가 변동에 영향을 끼칠까?
데이터를 수집하기 쉬운 최근의 기후 변화(평균 기온의 변화)와 물가 변동(물가 지수 또는 특정 품목의 물가의 변동) 사이의 상관 관계 탐색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