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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랭이님의 서재
  • [블루레이] 내일을 위한 시간 : 한정판 A타입
  • 장 피에르 다르덴 외 감독
  • 34,300원 (350)
  • 2015-10-26
  • : 521

산드라(마리아 꼬띠아르)는 우울증 때문에 병가를 지내다 복직을 코앞에 두고 해고당한다. 회사 동료들이 그녀의 복직 대신 보너스 천 유로를 선택한 것. 하지만 반장이 동료들을 협박하고 다닌 탓에 공정한 투표가 치러지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고, 곧 재투표 일정이 잡힌다. 그렇다고 해서 산드라의 복직이 쉬운 것은 아니다. 산드라의 복직이 결정날 경우 동료들이 받기로 한 천 유로의 보너스가 무산되기 때문이다. 산드라는 복직이 걸려 있는 월요일 재투표를 앞두고 직장 동료들을 하나씩 찾아가서 보너스 대신 자신을 선택해주기를 바란다.

 

우울증을 겪고 난 후 퇴직까지 당한 산드라는 인생이 망가져버렸다. 쉽게 눈물이 나고, 숨이 막혀 말을 못한다. 감정이 제멋대로 널뛰는 바람에 산드라는 감정에 끌려다닌다. 여기서 영화의 키포인트 하나가 나온다. 우울증이다. 산드라의 우울증 때문에 영화의 고저가 생긴다. 직장 동료를 만나서 긍정적인 답을 들으면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지만,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함에 빠져 약에 의존해야 한다. 이 감정의 줄타기는 영화 내내 갈등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잔잔하고 극적인 사건은 없다. 그러나 감정의 미묘한 줄타기로 인해 보는 사람을 쉽게 물러나지 못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결코 지루하지 않은 까닭이다.

 

이 영화의 뚜렷한 서사라고는 산드라가 주말 동안 직장 동료들을 찾아가서 투표에 참여할 것인지 묻고, 그들에게 복직을 선택해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열 여섯 명의 동료를 만나서 복직과 보너스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굉장히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반복성이 운동성을 지니게 되는 것은 이 대화 안에 서브 텍스트들이 등장해서다. 산드라의 동료 개개인마다의 사정이 불쑥 튀어나오면서 영화의 내용이 풍부해진다. 직장 동료의 입으로 듣는 변명 같은 사정과 때로는 산드라를 향한 동정과 연민으로 캐릭터마다 특색을 부여하고 입체화한다. 나아가 이 에너지가 산드라에게 전해지면서 산드라의 캐릭터를 보다 구체적으로 만든다. 동료와 산드라는 떼어낼 수 없는 호흡을 가지게 되는데, 동료들의 반응에 따라 산드라의 감정에 변화가 생기면서 보다 현실적인 캐릭터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이 현실에서 산드라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산드라는 거대한 사회와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우울증이라는 보이지 않는 병과 싸우려는 것도 아니다. 직장 동료와 싸우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의 부조리와 싸우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내면에 있는 불온한 감정과 싸우는 것도 아니다. 그럼 산드라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 걸까. 산드라는 싸우고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살고 싶어 발버둥치는 것뿐이다. 사람답게, 사람처럼, 사람 같이, 사람의 방식으로 말이다. 동료들을 만나면서 절박하게 사정하고, 때로는 겁 먹은 패전병처럼 도망치고야 마는 모습은 이 사회 곳곳에서 눈에 띄는 누구와도 닮아 있다. 영화는 산드라라는 개인을 다룬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개인의 사정을 다룬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난 할 수 없다. 산드라를, 동료들을. 사정을 변명처럼 둘러댄다고 해서 비겁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절박하고, 사정에 따라 비굴해지며, 연민에 따라 영웅이 되고, 변명에 따라 악인이 되기도 한다. 어쩌겠는가. 사람이란 무릇 그런 것을.

 

산드라가 동료들을 만나서 끊임없이 묻는 과정은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단순한 방법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일을 위한 시간이다. 내일은 단순히 투표날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일은 투표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산드라는 내일의 두려움을 안다. 복직 찬성에 투표하는 동료들의 연민을 알고, 앞으로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동료들의 마음을 안다. 동료들의 연민에서 불안과 감사와 비참함을 안다. 내일 이후에는 또 다른 내일이 존재함을 안다. 보너스를 놓친 동료들의 불만도 안다. 그들에게 인정 받고 때론 그들과 싸워야 하고 어쩔 땐 그들과 어울리며 견뎌야 할 시간의 공포 또한 안다. 그 모든 게 내일이다. 내일에는 또 다른 내일이 생기고,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을 만든다. 내일은 결코 오지 않지만 결국 오고야 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가깝고도 먼 미래다. 산드라는 미래로 가야 한다. 언제나 내일로 발 디뎌야 한다. 내일의 두려움 속에서 품고 있는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마침내 투표날이 찾아온다. 이 영화의 결말은 쓰지 않겠다. 이 영화는 영화 같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 같은 영화이므로. 단지 산드라의 입을 빌릴 뿐이다.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나를 위해 뭔가 결심한 건 처음이야."
"절반이 네게 지지하면 내겐 재앙이겠지만, 나도 그러길 바랄게."
"너한테 투표할게. 이웃을 돕는 게 신의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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