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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덴젤의 서재
  •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 김현아
  • 16,200원 (10%900)
  • 2023-09-01
  • : 14,703


언제부턴가 자꾸만 내가 알던 내가 아닌, 어딘가 어긋나고 바닥으로 향하는 나를 발견한다.

차라리 나 혼자만 아래로 아래로 치닿았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을..

자꾸만 주변으로 잿빛 기운을 옮기는것 같아 문득문득 우울감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슬픈 마음이 나를 물들이기 시작했는지, 어디서 그 마음은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알면서 모르고 싶어 끝끝내 외면한건지도 모르겠다. 

다 늦은 나이에 찾아온 감정의 사춘기는 이틀에 한번 꼴로 나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심리와 인간관계, 철학 등 많은 책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나를 이해하고 싶었고, 어떤 형태로든 위안을 받고 싶었기에 나는 집착하듯 책을 읽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있던 내게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가 들어왔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책의 제목이 나에게 이미 위로를 건네고 있었거든.


남들이 보기엔 괜찮은 외관들 속의 나는 사실 생각보다 훨씬 더 무너지고 있었는데, 그걸 알아주는 누군가가 나타난 것 같았다. 망설일 시간 없이 읽어 내려가며 나는 위로를 받았다.


나는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외관상 누군가의 분류에 의해서는 정상인에 속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나의 마음을 보둠에 준다고 느낀 이유는 바로 "사랑"이였다.


내과의인 저자가 이 정도의 깊이로 양극성 장애를 공부했다는건 그녀가 딸을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간절한 마음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딸을 살리고 싶은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느껴져 의학적 설명부분을 읽는데도 목안이 시큰거리는 기이한 경험을 되풀이하게 된다. 구구절절한 신파가 아니라 더 애달프고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지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이해와, 이해받고 싶었던 딸의 입장에서의 위로가 동시에 공존하는 책이다.


이 책은 비단 '사랑'만 주는 책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정신 질환을 대하는 기조에 병폐에 대해 생각거리를 묵직하게 던져주기도 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제도적 한계가 높다. 그들이 사회에 포용될 기회와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하다보니 아직도 정신질환은 음지에 머물게 되고, 그로 인해 환자와 그 가족들은 고통과 고립의 진창에서 여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 책이 많은 부류에게 읽혀지길 바란다.


저자가 딸의 질병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공부하고 부딪혀온 지난 시간들을 의료인으로서, 부모로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관점으로 서술해 그동안 잘 몰랐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영역들을 진중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므로..


어쩌면 세상에 소위 "정상인"이라는 부류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정상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알게 모르게 우리는 모두 조금씩 삐뚤어져 있는 사람들일디 모른다.

나 조차도 내 안에 지킬과 하이드가 동시에 공존한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의 엄격한 잣대로 주변을 재단하는일도 비일비재하다.

나에게 당연한 그 일들이 누군가에겐 왜 그렇게 안되는지 이해가 안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하면 그들 중 누군가는 나를 보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기준이 많을까, 강박이 심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비단 이런 예만 보아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정상인이 되기도 하고, 이상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곁을 내어주는 행동이 가진 힘을 새삼 느낀다.

가족이나 사회에서 누군가가 조금 더 곁을 내주었다면 나의 뒤늦은 사춘기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서로에게 곁을 조금씩 내어 준다면, 그들 또한 조금은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가족과 사회로 인해 마음이 힘든 사람들과 또 그들의 회복을 온 마음으로 빌고 있는 가족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되었음 한다.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마음이 조금씩 아픈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이 작은 다독임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아직도 정신질환에 대해 색안경을 낀 사람들과 너무 높은 잣대로 그들의 독립에 비협조적인 국가에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정신질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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