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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주인공인 샤를로테가 괴테가 거주하고 있는 독일의 작은 마을 바이마를 44년 만에 방문한 실화를 토대로 씌여진 소설로, 괴테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샤를로테와 그녀가 만나는 여러 인물들이 괴테를 중심으로 대화하는 내용들을 서사한 특이한 형태의 소설이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샤를로테에 대한 이야기로만 오해할 수 있지만, 글을 이루는 전체 대화들은 결국 괴테의 문학과 생애를 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부분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한 독특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처음 이 책을 보자마자 번득 들었던 생각은, 어슴프레 이름만 들어 본 '토마스 만' 이라는 작가의 작품이자, 책 제목 조차 생소한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라는 조합으로 인해 미쳐 읽기도 전부터 이 단어의 조합들이 주는 무게에 눌려 괜시리 마음이 지레 움츠려 들었었다. '너무 어려운 책이면 어쩌지? 읽으면서도 무슨 뜻인지 이해 조차 못하면 어떻하지? 나 괴테에 대해 잘 모르는데..' 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하면 과장이라고 느끼려나..?
그런데 왠걸, 몇 페이지 채 읽기도 전에 '재밌다!', '끊어 읽고 싶지 않아.'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몰입도 높은 내용과 매끄러운 번역의 조합이 이전의 생각들이 기우였음을 금새 깨닭았다.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3 part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로테가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예상치 못한 여러 인문들의 억지스런 만남을 통해 지난날과 지금의 괴테를 알아가는 부분과 괴테의 개인적인 독백과 일상, 그리고 그 둘의 만남, 이렇게 3가지를 이야기의 큰 골자로 삼고 싶다.
먼저, part 1의 경우,
젊은 시절 잠깐이지만 강렬한 마음을 나누었던 상대를 노년의 나이에 다시 떠올리며 만나고 싶어하는 샤를로테의 설레이는 마음의 묘사는 마치 내가 그녀가 된 듯 오랜만에 두근거림과 설렘을 느끼게 해주었다. 젊은 시절의 마음을 나누었던 이들을 잠시 떠올려보게도 하고..^^;
그리고 괴테와의 생활을 복잡한 애증의 감정으로 끊임없이 토해내는 리머박사를 통해 괴테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밀도 있게 상상해볼 수 있게 해주어 괴테의 작품들을 찾아 읽어 보고 싶어짐과 동시에 누군가에 대한 복잡다단한 양가적인 감정을 다측면에서 들여다보며 들려주는 긴 이야기들은 회사에서 어떤 이에게 느꼈었던 나의 감정이 이와 다르지 않았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다음, part 2,
실제 괴테의 생각은 아니지만 토마스 만이 상상한 괴테의 속마음을 통해 작가가 고된 망명 생활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시대관을 얼핏얼핏 엿볼 수 있는 영역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들을 통해 느껴지는 괴테는 고집불통에, 오만하고, 권위적인 인물의 전형같아, 타고난 재능에 대한 호감이 다소 반감되는 느낌이 종종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명한 사랑관들이 그의 작품들과 어울어져 기술되는 부분들은 향후 괴테의 작품들을 찾아 읽을 때 배경지식으로 도움이 될 듯하다.
끝으로 part 3,
기대하던 괴테와의 만남이 자신이 원하던 바와 다르게 전개되어 실망과 동시에 무너진 자존심, 또 주인공에서 밀려날 것 같은 불안함이 복합되어 그동안 우아하고 고상하게만 묘사되었던 로테가 '환영'의 괴테에게 격렬하게 감정을 퍼붓는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빼어난 부분이 아닐까 한다. part 1,2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로테의 극단적인 성격변화와 환영의 괴테가 들려주는 인생에 대한 명언들, 그리고 괴테 혹은 자기 자신과의 화해가 한 눈 팔 여지 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몰입도를 선사함과 동시에 이전의 로테와 괴테의 모든 대화와 행동들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만들어 책을 쉽사리 덮지 못하게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으면 지금 읽은 것과 또 다른 감동과 생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책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 그 어느 누구도 평면적이지 않아, 마치 시대와 장소의 배경만 다를 뿐 지금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법한 일들과 인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정말 8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이 맞는 건가? 너무나 현대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책이 바로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대가, 사회가 달라져도 우리 인간에게는 되풀이되는 경험과 감정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삶의 방향성을 되짚어 볼 수 있다는 것을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를 통해 다시금 깨닭게 되었다.
긴 글을 마무리 하며, 밑줄 그은 문장들 중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글귀들을 일부 소개하며 끝내고자 한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내가 느낀 이 감정을 다른 이들은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전을 통해 삶을 재정비해보고 싶다고 느끼는 이가 있다면 감히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 우리는 시간의 자식들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시들어가고 하강해왔지만,
삶과 젊음은 언제나 저 위에 있었고 삶은 언제나 젊었으며 언제나 젊음은 우리와 더불어,
인생을 다 살아낸 우리 곁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 인생을 살면서 나이가 드니까 비로소 너무 서두르면 넘어진다는 걸 알겠더군,
진짜 영웅정신은 꿋꿋이 견디는 것이고, 죽지 않고 살겠다는 의지야
∨ 자기 자신을 견지하여 삶의 통일성을 추구하고 자신을 지키는 것은 삶을 쇄신하고
다시 젊어지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 이별은 기나긴 장이었지만 재회는 짧은 소절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미완으로 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