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아이스 2025/03/0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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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 이경규
- 16,020원 (10%↓
890) - 2025-03-12
: 26,025
연예인이 쓴 책은 선입견이 있어 오히려 지나치게 된다. 딱히 할 얘기도 없으면서 인기에 힘입어 책까지 내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평소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연예인이 쓴 책이라면 다르다. 방송에서 미처 알지 못한 그의 이야기가 더 듣고싶다. 시청자로서 나도 나이먹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이경규 아저씨로 남아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들을 의향이 있다.
남에게 호통치고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유머를 구사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의 유머가 불편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아마도 정말 남을 무시하고 해치려는 마음보다 유머라는 것을 시청자와 당하는 당사자도 알 수 있을만한 흐름 안에서 그가 웃음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두운 새벽 양심냉장고를 기다리던 모습도, '힐링캠프'에서 나오는 인물들에게 툭툭 던지는 말들도,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 연습하고 김태원 아저씨와 주고받던 말도, '개는 훌륭하다'에서 참으로 강아지를 예뻐하던 모습도, 열심히 만든 새 영화를 들고나와 대놓고 홍보하던 모습도 진심으로 닿았다.
이 책은 벌써 45년 차 예능인이라는 그의 첫 에세이다. 글에서 무심한듯 유머가 슬쩍 튀어나오긴 하지만 대체로 진지하고 진솔하고 담백해 내밀한 그의 고백을 듣고 있는 듯하다. 웃음을 몰고 다니던 예능 속 그의 삶이 늘 승승장구하고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고 때로 부침을 겪고 마음 고생하기도 했지만 겸허한 태도로 성찰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가볍지 않다.
방송하러 호주 횡단여행을 갔다 쏟아지는 별을 보다 갑자기 눈물이 나고 공황장애가 찾아왔던 이야기나 조용히 혼자가 되는 낚시가 주는 고독과 침묵이 주는 시간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반복과 책임감, 성실함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번아웃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말라 조언하며 공익예능을 하며 그에 걸맞는 삶을 살기위해 절제하고 긴장하며 책임감을 갖는 태도도 보여준다.
왜 그가 예능인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영화를 제작하는지에 대한 그 진심도 이해할 수 있다. 어린시절 극장삼천지교를 하고 영화라는 운명을 만나 배우를 하려고 수많은 연극오디션에 응했지만 번번이 사투리 지적을 당하며 고배를 마셨고, 어쩌다 개그맨콘테스트에 합격해 코미디언을 직업으로 살지만 영화라는 꿈을 품고 이를 실현해가며 2026년 개봉을 목표로 새 영화를 준비하는 그의 이야기는 반갑다.
그 밖에 대학시절 먹던 할머니 닭곰탕을 살려 꼬꼬면을 탄생시킨 이야기, 무뚝뚝했지만 선명한 엄마와의 기억, 사랑하는 딸과 아내를 이야기하는 가정적인 그의 모습이 드러나고 애견인으로서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강아지들과의 일화와 인생을 돌아보며 나누고싶은 성찰의 조언도 담았다.
인기예능인 선배로서 그를 존경하는 유명 예능후배들의 추천사가 책에 많이 실려있지만 그게 없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추천사 없이도 충분히 인간 이경규는 대중에게 궁금한 사람이니까. 좀더 그의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좋았을텐데 각 글이 더 길지 않아 좀 보여주려다 만 것 같은 건 좀 아쉽고 근래 이 불안한 시기를 모자람없이 풍요로운 태평성대인 것처럼 설명한 부분은 동의할 수 없지만 나머지는 괜찮았다. 거기다 책에 든 포토카드 대어를 낚고 흐뭇한 표정의 모습 뒤에 '안뇽 경규예요'라는 친필 인사라니 미소가 나온다. 여전히 꿈꾸는 소년같은 귀여운 예능인 이경규 아저씨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역시 대중의 사랑을 받을만한 괜찮은 사람같았다.
☆ 출판사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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