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을에 읽는
아이스 2023/10/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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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안보윤 외
- 13,500원 (10%↓
750) - 2023-09-01
: 1,332
하얀 메밀꽃이 피는 가을,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작가의 정신을 잇는 <2023 이효석 문학상 수상집> 작품들을 만났다. 작년까지 수상집 표지와 달리 올해는 회색 안개빛 표지에 수상작가의 사진이 담겨있다. 기존 표지 디자인에 비해 바뀐 표지가 더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궁금하다.
벌써 24회째를 맞이한다는 올해 이효석문학상 작품집에는 대상 수상작인 안보윤 작가의 작품과 그녀의 자선작, 수상소감과 인터뷰 등이 실려있고, 5편의 우수 선정작 작품과 기수상작가 작품 1편, 실려있다. 타 문학상 작품집에 비해 대상 수상작가와 작품을 중심에 두고 강조하는 인상을 받았다.
(스포주의)
안보윤의 「애도의 방식」대상 수상작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으나 하필 가해자가 본인을 괴롭히는 현장에서 실족으로 사고사 당해 피해자인 화자의 마음은 불편하다. 공연한 소문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다 화자는 터미널 앞 작은카페에서 일하며 낯선 타인들의 소란 속에 파묻혀 자신을 잊고자 한다. 가해자 엄마가 그 앞에 나타나 자신의 아들이 괴롭혔던 과거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떠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지만 화자는 가해자가 죽음의 순간을 반복 회상하며 트라우마에서 갇혀 벗어나지 못하고 혼자 끌어안기로 결정한 것처럼 보인다. 폭력이 가져온 거둘 수 없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안보윤 「너머의 세계」자선작
대상 수상작가가 고른 자신의 다른 소설이다. 최근 선생님을 상대로 한 교내 학생과 학부모 폭력과 악성민원 사건이 도를 넘어서 선생님들을 자살까지 몰고가 공분을 사는 가운데 이 소설은 학교 현장에서 이런 사건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 일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학교에서 겪은 트라우마로 선생을 잠시 그만두고 무인점포 관리 일을 하며 살아가는 화자가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이 전해진다.
강보라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예술분야에서 나름 입지를 가진 40대 여성이 홀로 간 해외여행지 우붓에서 젊을 때와 달라진 여행 분위기를 느끼던 중, 예술 견식이 부족해 보이는 예술하는 이들에게 우월감을 느끼면서도 그들에게 인정받고 함께 어울리고 싶어하는 심리를 그렸다. 경력은 적지만 자유롭고 기회가 많은 젊은 예술가와 그에 비해 많은 것을 이뤘지만 이미 많은 것이 결정되어 자조하는 40대 예술가가 한데 어우러지지 못해 한 어색한 그림 속 사물같은 느낌을 준다.
김병운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엄마가 죽었다고 했던 삼촌이 아직 요양병원에 살아있다는 사실을 삼촌의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화자는 친구와 그를 찾아가기로 한다. 성적 소수자였던 삼촌과 그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으며 화자, 또 삼촌의 친구, 그리고 친구 장희의 이야기를 통해 세대를 잇는 퀴어 서사를 들려준다.
김인숙 「자작나무 숲」
물건과 쓰레기를 집에 쌓아놓고 생활하는 호더 할머니가 살고있는 집, 하지만 그 집이 상속받을만한 경제적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은 손녀는 할머니집에서 그녀와 함께 머문다. 과거를 붙들고 살고싶은 할머니의 욕망과 과거의 비밀을 알고싶은 손녀의 욕망이 함께하며 세속적 가치로 환원된 쓰레기 더미의 집에서 둘의 시간은 흐르고 손녀는 할머니가 된다.
신주희 「작은 방주들」
방주를 뜻하는 아크(ark)라는 암호화폐 전자지갑 회사에서 일하다 고객 자살의 충격으로 실종된 친구 진주, 회사 젊은 후배의 참견에 거슬려하던 중 회사에서 갑자기 무보직 대기발령을 받게된 화자, 화자는 사직 후 친구 진주가 선물했던 유유니행 여행을 떠나고 현지에서 소금캐는 여성을 보며 상념에 사로잡힌다. 화자는 진주와 젊은 후배, 또 자신마저도 위태로운 세상에서 실족하지 않고 각자의 방주로 살아남기를 응원한다.
지혜 「북명 너머에서」
뇌수술 후 과거와 현재를 혼동하는 남편이 과거 얘기를 현재인양 꺼내자 아내는 이에 응수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고향에 머무는 한 최선의 선택인듯했던 지역내 백화점에서 일하며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동경하며 함께 직원 언니와 함께 어울리던 시절, 하지만 그녀가 다른 일터로 떠나고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실망하게 되고 화자 또한 다음 단계로 성장했음을 인식한다. 미지의 세계를 꿈꾸던 젊은날을 회상하며 무심히 지나간 시간을 안타까워 한다.
김멜라 「이응 이응」
공공연하게 혼자서 성적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시스템인 '이응'이 통용되는 가상사회에서 성은 더이상 가해의 도구가 아니고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이 과학기술 발달로 성욕을 해결하려는 매춘이나 원치않는 임신 등은 사라지고, 성범죄가 감소하며 교도소 수감자 재범률이 줄지만 혼인률 또한 줄었다. 이응을 이용하면서 사람등은 친밀한 포옹과 접촉으로 교감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화자는 자신의 할머니와 세상을 떠난 강아지의 따뜻한 기억을 스토리로 재현하며 만족을 느낀다. 성욕으로 인한 각종 범죄와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 현실에 대안이 되는 신선한 이상사회 이야기였다.
그 시기의 문학상 작품에는 현시점 작가들이 판을 벌려 이야기 나누고 싶은 화두와 첨예한 이슈가 녹아있다. 최근 문학계에서 자주 보이는 여성 화자의 이야기, 퀴어 서사, 학교폭력, 암호화폐 사기사건 등을 다룬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고 불안한 현재를 살며 힘들터 하지만 그 나름의 방식으로 갈 길을 모색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에서 만날 수 있었다. 2023년 가을 책 뒷부분에 이효석 작가의 연표도 실려있는데 이효석 작가의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출판사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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