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예술을 향유하는 이유 중 하나는 타인의 작품을 통해 자신을 비춰보고 더 잘 살아가기 위한 동력을 얻기위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저자가 붙인 이 책의 제목 <미술-보자기>는 미술이라는 '보'는 일을 통해 '자'신을 '기'억하는 힘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작가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투영시킨 작품을 감상하며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을 자각하며 이 삶에 끝이 있음을 새삼 자각하는 기회를 얻는다.
25년간 현장에서 보도사진을 찍어온 저자는 팩트를 담아내는 사진과 다른 매력이 있는 미술 작품을 살펴보고 본인이 선정한 222편의 작품들을 몇 개의 핵심 키워드로 묶어 소개한다. 미술작품과 작가에 얽힌 이야기 뿐만 아니라 작품과 연계된 주제나 사연에 얽힌 철학, 문학, 역사, 음악 등 장르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작품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저자는 작품을 117 개의 소키워드로 묶어 꼭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흥미로운 주제부터 찾아 자유롭게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상상'이라는 대주제 아래 저자의 편의에 따라 낯섦, 불쾌, 무명, 낙서, 쪽빛 우주 등의 소키워드로 나누어 작품들을 실었다. 환한 낯의 하늘 아래 어두운 대저택, 밤의 외등이 이질적인 낯선 분위기를 자아내는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라는 작품은 실재하는 현실과 이성과 논리에 대한 거부를 나타낸다고 하는데 김영하 작가의 소설 '빛의 제국'도 이 그림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이라는 벨라스케스의 사실적인 초상화를 300여년 후 오마주한 베이컨의 그림은 기괴한 불쾌감을 주면서도 충격적이라 눈길을 끌었다.
이름 없는 병원청소부로 살다 죽은 후 발견된 작품 "비비언걸즈'에서 소녀들이 가상의 왕국에서 어린이들의 반란을 돕는다는 내용을 담았다는 무명작가 헨리다거의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몸을 찍어 판화처럼 찍은 이브클랭의 '인체측정'이 사용한 울트라마린 컬라와 유사한 우리나라 작가 한광석의 쪽빛 작품은 꽃과 물을 주물러 빚어낸 색이라는 점에서 어쩐지 유사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피티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바스키아와 뱅크시의 작품, 우주를 담아낸듯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연작'를 소개하며 그의 오랜 친구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실어 연결고리를 찾는다.
미술작품에 국한하지 않고 미술사 밖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지식으로 취향을 쌓은 저자의 눈으로 작품을 다시 바라보는 것은 이야깃꺼리 많은 친구와 걸으며 미술관 나들이를 하는 기분을 준다.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끌리는 키워드부터 선택해 미술작품을 소재로 다양한 분야로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와 감상자 모두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예술작품들은 오래오래 남아 후대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은 새삼 예술의 가치를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시공간을 떠나 의미있는 작품들과 한순간 연결돼 잠깐 마음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한 작품을 깊이있게 파는 책은 아니지만 여러 미술작품을 다각도로 살펴보며 삶을 이해하고 좀더 깊이있게 살펴보고 싶은 흥미로운 미술 작품을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 이 책은 출판사를 통해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