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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입니다~~~ *_*
생사당
체리마루  2007/05/01 18:01

 

[분수대] 생사당 [중앙일보]

관련링크 분수대 기사 리스트 명(明) 말에 위충현(魏忠賢)이란 불량배가 있었다. 도박 빚을 못 갚고 도망 다니다 궁형(宮刑)을 당하는 바람에 환관이 됐는데 천계제의 유모 이씨와 통하더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됐다. 황제의 비밀경찰인 동창(東廠)을 장악해 공포정치를 자행했다.

그가 궁을 나서면 백관이 '구천세' '구천구백세'를 불렀다. 더욱 황당한 것은 배운 것이라고는 없는 자신을 공자와 같은 성현의 반열에 올려 생사당(生祠堂)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 궁궐을 방불한 사당에 금으로 장식한 위충현의 상을 안치하고, 여기에 절을 하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했다. 심지어 황제마저 봄.가을로 공자 묘에 제사를 지내면서 거기 배향된 위충현의 상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김희영, '이야기 중국사')

권력이 차고 넘치니 세상과 역사의 평가에까지 욕심을 내는 모양이다. 그래 봤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걸. 위충현은 다음 황제 숭정제가 즉위하자마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송덕비(頌德碑)가 없는 곳이 없다. 물론 훌륭한 업적을 남겨 백성들이 진심을 모은 것도 있다. 하지만 일부 고약한 벼슬아치는 부임하자마자 돈을 걷어 비석을 세우도록 강요했다. 농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제 아비 송덕비를 세운 고부 군수 조병갑 같은 이다. 이런 비석 앞을 지날 때는 동네 사람들이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고, 욕을 했다. 비석 치기란 놀이도 여기서 생겼다고 한다.

이승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다 보면 저승의 권세까지 넘보게 된다. 중국의 황제들은 제위에 오르자마자 자신이 묻힐 왕릉부터 조성했다. 천하의 보물을 관에 넣고, 후궁들을 순장했다. 그러나 분묘의 흙이 마르기도 전에 파헤쳐지기가 다반사였다. 이 때문에 원나라 황제들은 침목 사이에 자신의 시신만 넣어 막북(漠北) 기련곡에 흔적도 없이 묻도록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념관을 인제대에 세운단다. 노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다. 좋건 싫건 역사의 기록은 남겨야 한다. 세계 최장기간의 왕조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을 가진 민족이 아닌가. 재임 중 자신의 기념관만 챙기는 것 같아 얄밉기는 하지만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옹졸해 보인다. 오히려 역대 대통령 기념관을 세우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다만 자기 머리를 깎는 일은 기록을 남기는 데까지다. 평가마저 스스로 하겠다는 건 생사당을 짓는 꼴이다. 측근들을 내세워 평가포럼을 만든다니, 그러다 비석 치기를 당하지는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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