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모방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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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모방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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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같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면 으레 제기되는 것이 '모방범죄' 논란이다. 미디어 폭력이 실제 폭력을 유발하는가의 문제다. 이번에도 조승희씨의 사진 속 포즈가 몇몇 폭력영화 속 포즈와 유사하다며 논란이 됐다.
이는 학계의 오랜 주제이기도 하다. 정답은 없다. 폭력 이미지에 장기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폭력을 익숙하게 만든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폭력 이미지에 노출된 사람이 모두 다 폭력을 행사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그래서 미디어 폭력은 사회 폭력의 직접적 원인이라기보다 간접적.장기적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폭력사건에서 모방범죄가 부각되면 사실상 범죄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들, 예컨대 사회.경제적 문제 등은 희석되는 것이 보통이다. 미디어 폭력이 구조적 사안의 핵심이 돼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폭력보다 실제 사회의 폭력이 더 무서운 본질이다" "미디어 폭력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현대 영화에서 하나의 상업.미학 장르로 자리 잡은 폭력 영화들이 "왜 폭력을 영화적 표현으로 택했는가"에 대해 보다 진지한 답을 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 미디어 학자 토드 기틀린은 '폭력 미학의 대부'인 퀜틴 타란티노 감독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다. 그는 "영화 속 폭력은 미학"이라는 타란티노의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할리우드는 학살의 형식을 만들어 왔다"고 맹공하는 기틀린은 "(폭력영화에서) 동기와 도덕적 중요성은 없어도 되는 시시한 문제처럼 치부되며, 관객들은 영화 속 희생자에 대해 아무런 동정심을 갖지 않는다. 폭력은 일상생활의 중력으로부터 풀려나 순수한 동작과 서스펜스, 안도라는 추상적 영역으로 이동한다"고 비판했다('무한미디어'). 또 "잔인한 영화가 이렇게 많은데 왜 범죄가 줄지 않느냐"며 폭력영화의 카타르시스 효과도 부정한다.
물론 기틀린의 주장은 영화적 이해가 다소 부족한 것이다. 그저 폭력적인 영화와 폭력을 통해 폭력성을 고발하는 영화도 구분하지 않았다. 또 인류에게는 폭력영화 말고도, 도덕적 무게감을 덜어낸 폭력성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은 오랜 전통이 있다.
그러나 일반 관객이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나날이 폭력영화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더구나 유혈이 낭자한 영화를 아무 도덕적 고통 없이 가뿐하게 즐길 줄 아는 것이 영화적 감식안의 표식처럼 보이는 시대 아닌가. 기틀린의 말이 심상치 않게 들리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