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총기 규제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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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총기 규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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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기사 리스트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백악관의 브리핑실에는 '브래디 룸'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그 방에서 브리핑을 했던 대변인 제임스 브래디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1981년 3월 레이건을 노린 정신질환자 헝클리의 총탄에 머리를 맞아 반신불수가 됐다.
퇴임 후 그는 부인과 함께 총기 규제 운동가로 변신했다. 94년부터 시행된 '브래디 법'이 그 산물이다. 총기를 구입할 때에는 그 이유를 명시하고, 수배.정신이상.불법체류자 여부 등에 대해 일정 기간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법안이었다. 그러나 10년 한시법으로 시행된 이 법은 2004년 시한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브래디가 뛰어넘지 못한 장벽은 전미총기협회(NRA)였다. '벤허'의 주연배우 찰턴 헤스턴이 2004년까지 회장이었다. NRA는 총기 제작.유통 업체의 기부금을 자금원으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이 있다. 브래디 법의 폐기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의회에 제출된 총기 규제 법안을 번번이 좌절시켰다.
NRA의 배경에는 총기 소지에 관대한 미국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가 있다. 1791년에 추가된 연방 수정헌법 2조는 "규율 있는 민병대(militia)는 자유국가의 안전보장에 필요하므로, 국민이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부 개척과 독립전쟁을 거치는 건국 과정에서 생겨난 가치관에 바탕을 둔 조항이다.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미국인은 "나와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 나 자신"이란 자위 사상을 신봉한다. 2000년 대선에 출마한 민주당의 앨 고어가 공화당의 부시 후보에 패한 원인 중 하나로 총기 규제를 주장한 점이 꼽힐 정도로 '총기 소지=시민의 권리'란 인식이 퍼져 있다.
인구 3억 명의 미국에 2억5000만 정의 총기가 보급돼 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소형 총기 세 자루 가운데 한 자루는 미국에 있다는 얘기다. 매년 3만 명이 자살이건 타살이건 총기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1999년 13명이 숨진 컬럼바인 고교 참사 때에는 총기 규제론이 심각한 의제로 논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상 최악의 사건이 일어난 지금은 당시에 비해 그다지 활력이 없는 듯한 느낌이다. 사건의 엽기성에 묻혀 버린 탓일까. 총기 소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이 극단적 자폐에 갇힌 범인의 일탈로만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젊은 넋들의 희생이 너무나 덧없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