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봄입니다~~~ *_*

 

[분수대] 와인 스트레스 [중앙일보]

관련링크 분수대 기사 리스트 우리나라에서 총 수십만 권이 팔린 일본 만화책 시리즈 '신(神)의 물방울'의 인터넷 한자 표기가 원작과 달라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있다.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보면 물방울을 뜻하는 '滴(적)'자가 떠돌아다니지만 원제는 '(놔)'다. 우리 옥편에서 찾기 힘든 일본식 한자여서 네티즌들이 대신 '滴'을 쓰는 듯하지만 어쨌든 이로 인해 '말 맛'이 뚝 떨어졌다. '滴'은 빗방울 같은 밋밋한 물체의 개념이다. 반면 ''는 감각적인 시어(詩語)에 가깝다. '꽃이 물방울처럼 흩어진다'든가 '별빛이 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진다'는 '花の' '星の' 같은 용례가 그것이다. 원작의 '신의 물방울'은 '현존하는 최고의 명품 와인'을 뜻한다. '滴'이 담아내기엔 다소 벅찬 느낌이다.

만화책 제목만 놓고도 '어' 다르고 '아' 다를 정도로 와인은 뭔가 까다롭고 범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술이다. 우리나라에 '와사모(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유난히 많은 것도 극성스러운 한국 애주가들의 도전 정신의 발로일 것이다.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는 와인이 문화와 세련미의 동의어처럼 쓰인 역사는 오랜 기원을 자랑한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면서 토론하는 습성이 야만인과 다른 점이라고 자부했다. 심포지엄(symposium)의 어원은 '함께 마신다'는 뜻이다. 포도 경작지가 늘고 대량 생산 기술이 발달해 노예까지 와인을 마시게 되자 귀족들은 빈티지(포도 수확 연도)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이걸로도 차별화가 힘들어지자 와인 마시는 태도를 따졌다. (톰 스탠디지 '여섯 잔에 담은 세계사')

와인을 모르면 고급스러운 비즈니스를 하는 데 불편을 느끼는 시대가 됐다. 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와인 전문가 뺨치는 이들이 늘어난 이유다. 일찍이 카를 마르크스는 흥미롭게도 자본가가 아니라 '와인을 마시지 않는 사람'을 쉽사리 믿지 말라고 했다.

한 경제연구소가 최근 기업체 대표 등 국내 경영자 400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다섯 중 네 명 이상(84%)은 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는 대답이었다. 식탁에서 '좋은 술 골라 보라'는 권유를 받는다든가, 와인 화제에 끼지 못하는 것 등 때문이었다. '고급 와인 한 잔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래는 장밋빛으로 물든다'고 한 나폴레옹이 되살아난다면 뭐라고 할까. '격식도 좋지만 일단 와인 맛부터 즐기면서 슬슬 여유 있게 배워 가시길'이라 하지 않았을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