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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n.sungmin님의 서재
  • 이제야 언니에게
  • 최진영
  • 14,400원 (10%800)
  • 2019-09-20
  • : 5,494

이제야 제니에게 - 최진영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이렇게 흘러야 할 시간들이 다시금 돌아가고 되돌아가고 또 돌아 그 때 그 일들이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책은 불과 10년 전의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과 시선에 대해 또 그로부터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가해자 혹은 피해자여도 싸다는 식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잔인하고도 아프게 또 너무도 현실적이게 그려냈다. 읽는 내내 생각이 든 것은 ‘왜 피해자 주변의 그런 시선과 너가 부끄러워야 마땅하다는 듯한 암묵적 압력이 피해자의 몫이 되는 것 인가’이다. 읽는 내내 이거 참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는데...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아직까지도 이 사회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 생각만으로도 두통이 일게 했다.

 

피해자가 숨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 무너지기도 수없이 무너지면서도 본인의 생에 대한 고통과 불행도 결국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도 부정할 필요도 없는 세상을 바라며 나로서, 나는 나로서 살고자 애쓰며 살겠다는 제야를 나는 응원하고 싶었다. 그런데 과연 내가 쉽게도 응원해도 될까. 내게는 그런 자격이란게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나는 과연 얼마나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았을까. 나의 작은 말 한마디 작은 시선 하나가 또 다른 제야들에게 날아가 비수가 되진 않았을까.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치를 떨며 울분을 토해내게 했던 장면들의 사람들과 과연 나는 다른 사람이 맞는걸까 하며.

 

제야의 일기 혹은 제니에게 쓴 편지로 이루어진 책은 참 쉽게도 읽혔다. 읽히는 것은 참 쉬었다. 그 읽는 마음이 너무도 아프고 더뎠을 뿐. 책은 쉼 없이 단숨에 읽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참아야 할 화와 부끄러움과 역겨움이 즐비했다. 그러기에 나는 이 빠르게 읽히는 속도에 겁이 나서, 혹은 그 속도는 책에 몰입한 내 어떤 감정의 폭발을 말하는 것 같아 이 또한 겁이 나서 내내 책을 덮고 또 덮고를 반복했다. 읽는 독자로서의 입장이 이러했다. 그렇다면 과연 작가의 입장은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역하고 울분에 찬 이것들을 작가는 토해내지 못하고 이렇게 아프게 아프게 담아내면서 얼마나 그 속에서 넘어지고 주저앉고 울었을까.

 

마지막 작가의 말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제야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를 장면을 쓸 때는 제야의 고통을 묘사할 때만큼 주저했다.” 제야와 같은 일을 겪은 또 다른 제야들에게 혹여나 또 다른 무지의 생채기를 줄지도 모른다는 끝없는 타인에 대한 배려, 아픔을 아는 사람으로서의 배려. 소설 전체에 퍼져있는 작가님의 마음씨가 이 말 한 마디로 표현된다.

 

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무거운 손짓으로 닫았다. 우리를 아는 제야를 알게 되었고, 또 제야를 모를 수 없는 내가 되었기에.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어딘가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도 슬픈 현실이지만) 제야도 부디 소설 속 제야처럼 ‘애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마지막으로 책을 말하고 싶다. 책은 어려서 무시당했고, 젊어서 의심 받고, 늙어서 또 무시당할 우리나라의 한 여자의 이야기. 젊고 혼자인 여자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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