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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민의 서재
  • 미국민중사 1
  • 하워드 진
  • 20,700원 (10%1,150)
  • 2008-12-31
  • : 1,757

처음 이 책을 집어 들고 망설였다.

600쪽이 넘는 분량, 거기다 두 권. 읽어 말아.

머릿속은 시간투자대비 효용을 요리조리 재고 있었다.

첫 장을 넘겨 내려가면서, 좀 전 나름 합리적인 체하던 계산은 어디가고

책속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화나고 슬펐다가, 기쁘고 가슴 벅차 코끝 찡해짐을 내내 반복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다보니 어느 새 마지막 장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승자가 있다는 건 패자도 있다는 얘기.

승자와 패자 중 어느 쪽에다 감정이입을 하냐에 따라 생각은 달라진다.

승자의 입장에 서면 칭기즈칸, 알렉산더, 나폴레옹은

영웅이고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들에게 아무 이유없이 처참히 짓밟혀 간,

이름 모를 수많은 민중의 입장에 서면 영웅이 아니라 살인마가 된다.

 

이 책은 그 패자들의 이야기.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미국 곳곳이 들끓었다.

한쪽에선 비난이, 다른 쪽에선 격려가 밀려들었다.

신대륙에 정착해 세계최강 패권국가 USA를 세운 저력,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던 이들의 민낯을 드러내 보이는 이 책이

미국인들의 심기를 사정없이 건드렸다.

감히 자랑스러운 미국역사를 비판하다니.

 

그러나 하워드 진은 처음부터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미국의 조상들이 얼마나 야비하고 야만적이었는지.

본래 그 땅에 살던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내몰아 세운 나라 미국.

콜럼버스는 죽는 날까지도 자신이 발견한 신대륙이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라 생각했다.

졸지에 원주민들은 자신들과 아무 관련도 없는 ‘인디언’이 되었다.

조상대대로 평화롭게 살던 인디언들은 삶의 터전을 뺏기고

변방으로 쫓겨나는 처지가 된다.

 

미국을 세운 조상들은 다수 미국인들에겐 위대한 개척자고 정복전쟁의 승리자다.

하지만 인디언들에겐 침략자고 학살자다.

이렇게 하나의 사실을 놓고 어느 편에서 바라보냐에 따라 판단은 달라진다.

분노한 미국인과 격려와 고마움을 전한 미국인처럼,

이 책을 읽고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서로 다른 감정이입을 한 결과다.

 

만약 누군가 김구 선생님과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고

유관순 열사는 여자깡패였다고 말한다면,

대다수 한국 사람은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낄 거다.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사실과 배치되는, 이런 말이 감정을 상하게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단체가 실제로 있다.

뉴라이트(New Right)라는 단체다. 뉴라이트는 신우파란 뜻.

이들은 아마 피해자인 한국보다 침략자고 가해자인 일본에다 감정이입을 했나보다.

 

하워드 진은 ‘역사는 아래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평생을 살았다.

반인종차별과 반전운동으로 정권의 탄압을 받았고

결국 종신교수 지위도 박탈당하게 된다.

노암 촘스키와 함께 베트남전쟁을 비판하며 시민불복종운동을 이끌어냈고

미국 여러 곳을 다니며 강연을 하기도 했다.

강연을 위해 들른 어느 고교에서, 한 여학생이 분노 섞인 목소리로 따지듯 묻는다.

“그럼 선생님은 왜 이 나라에 사시나요?”

그러자 하워드 진은

“내가 사랑하는 건 내 조국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된 정권이 아닙니다.”

라고 답한다.

 

하워드 진은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가 아니라

힘없는 보통사람들의 편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누군가는 권력자의 위대함에 찬사를 보내지만

어떤 이는 피라미드를 위해 다치고 죽어간 수많은 민초들을 떠올린다.

세계최강 미국은 평범한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의 토대위에 세워졌고

미국의 오늘도 그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민중의 희생에 비해 권리는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민중의 요구는 참 소박해 보이지만,

그걸 얻어내기까지 너무도 큰 대가를 치러야했고 인내해야했다.

 

남의 나라 민중의 역사를 보고 있지만 낯설지가 않다. 참 많이도 닮았다.

지금까지 민중의 역사는 실패와 좌절을 더 많이 맛본 역사였다.

그러나 그 어떤 힘도 끝내 좌절시킬 수 없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민중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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