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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민의 서재
  • 발칙한 현대미술사
  • 윌 곰퍼츠
  • 22,500원 (10%1,250)
  • 2014-09-29
  • : 3,288

간만에 고른 미술책.

책을 펼치자 먼저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웬 지하철노선도.

런던 지하철노선도를 활용해 현대미술이 지나온 길을 그려놓았다.

‘인상주의’ 역에서 출발해 ‘지금의 미술’ 역까지.

현대미술이란 열차에 올라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여기가 어디쯤인지 가끔 노선도를 확인해보는 거도 좋을 듯싶다.

 

왜 현대 미술가는 우릴 당혹스럽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하는 걸까?

 

어릴 때 본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

친구들과 놀다가도 이 거 나올 시간이면, 헐레벌떡 뛰어가 TV를 켰다.

내가 이 만화영화에 빠졌던 이유는 아마도...

네로가 그림대회에서 상을 받을 수 있을지,

또 이쁘고 착한 아로아와 네로를 보는 즐거움.

어린 눈에 비친, 뭐랄까

그 또래끼리 살짝 썸타는 느낌이 괜히 좋았다는.

난 네로에게 감정이입을 한 채, 맘속으로 네로를 응원했던 기억이.

그런 내 바램에도, 끝내...... 슬펐다.

 

공모전 당선이란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어느 추운 겨울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네로는

차가운 성당바닥에서 숨을 거둔다. 파트라슈와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린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림.

바로 플랑드르의 거장 루벤스가 그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그땐 무심코 지나쳤던 이 그림이

루벤스 작품이란 걸 이십대가 돼서야 알았다.

또 플란다스가 플랑드르란 것도.

풍차하면 네덜란드가 떠오르지만, 이야기 배경이 된 곳은 플랑드르,

지금 벨기에쯤 되는 지방이란 거.

루벤스 그림도 벨기에 안트워프 대성당에 걸려있었단 걸.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림이 뭐라고 죽어가면서까지.

온갖 볼거리가 넘쳐나는 ‘이미지의 홍수’ 시대를 사는 우리.

웬만한 시각적 자극에도 무뎌져가는.

하지만 사람이 만들어낸 이미지라곤 회화나 건축, 조각 외엔 많지 않았던,

옛날 사람들에겐 이미지를 대하는 느낌의 강도가 달랐을 듯.

우리가 영화관에서 돈내고 영화보는 거처럼,

그 시대 사람들도 그림을 보려면 돈을 내야했다고.

관람료를 낼 수 없던 네로같은 가난한 사람들은,

평소엔 커튼에 가려져있는 이 거장들 그림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

 

옛날 서양미술의 주제와 소재는 주로 기독교와 그리스신화.

종교는 미술가들을 적극 후원했다.

교회는 미술가가, 미술가는 후원이 필요했으니까.

말하자면, 서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생관계 같은.

다수가 글을 읽지 못했던 시대에,

성서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신부님이 설교할 때 정도.

하지만 ‘백문이불여일견’이랬다고, 보는 것만 할까.

성서는 미술가들에게 작품의 영감을 제공하는 원천.

<최후의 만찬>,<천지창조>,<최후의 심판>같은 이 그림 앞에서

대중들이 받았을 감동과 두려움이 어땠을지.

우리가 3D영화관에서 대형스크린을 통해 볼 때보다 더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사진기를 발명하고부터 사정은 달라진다.

더 빠르고 싼 가격에, 대상을 포착해서 보여주는 사진덕분에

이제 대중들도 내 사진, 우리 가족사진 한 장 가질 수 있게 된 것.

앞으로 대중들이 점점 더 많은 이미지에 노출될 시대가 열리게 됐다.

그전까진, “나 화가요” 하려면,

대상을 정확히 재현해내는 능력을 갖춰야했다.

그래야 돈 있고 높은 사람들 초상화도 그려주고,

대중들에게 성서 속 장면들이 실제 눈앞에 펼쳐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

그동안 화가 자격인증 능력이나 마찬가지였던 게,

카메라로 슬슬 넘어가기 시작하니, 화가들도 뭔가 다른 돌파구가 필요했을 듯.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랄까, 화가로서.

물론 현대미술로 넘어오는 과정이 단지, 카메라 때문이라 할 순 없지만.

 

미술가들이 다른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끔,

그 시대 모든 환경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사람들 관심이 신에서 인간과 자연으로 옮겨가는 조짐은

이미 르네상스시대부터 싹트고 있었으니까.

이제 미술작품에서 종교와 신화 이야기 같은 서사 없이도,

뭐든지 작품 주제와 소재로 가능해진다.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없을까?

현대 미술가들은, 오랫동안 해왔던 내용과 형식을 벗어나,

관람객에게 익숙함보다 낯설음을, 아름다움보다 충격을 주는,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하게 된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지만 왠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현대미술이란 열차에 올라, 이 책이 안내하는 대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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