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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민의 서재
  • 한국이 싫어서
  • 장강명
  • 12,600원 (10%700)
  • 2015-05-08
  • : 9,924

해질녘, 어김없이 들려오는 애국가소리.

동네골목에서 공차며 놀던 우린,

어느 방향인지도 분명치 않은 ‘국가’를 향해

가슴에 손을 올린 채, 그렇게 잠시 ‘얼음’이 됐다.

초코파이 하나 더, 짜장면 한 그릇 더 먹는 게,

해지는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공차는 게 마냥 좋았던,

동네 꼬맹이들도

이 장엄한 국가의 목소리 앞에선

애국자임을 증명해야했던 시대.

 

이젠 아득하기까지 한, 국기하강식의 기억을 갖고 있는 세대에겐

어쩌면 불편한 맘이 들게 할지도 모를 소설제목 ‘한국이 싫어서’.

주인공 계나는 자기가 호주로 떠난 이유를 쿨하게 들려준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선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순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미국이 싫다는 미국사람이나 일본이 부끄럽다는 일본사람한테는

‘개념있다’며 고개 끄덕일 사람 꽤 되지 않나?

 

내가 여기선 못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선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할 동물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긴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동물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지다는 건

나도 아는데.......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본문 중에서

 

초등학교 때, 교실 칠판 왼쪽엔 ‘국기에 대한 맹세’가

오른쪽엔 ‘국민교육헌장’이 커다랗게 걸려있던 기억이.

거의 A4 절반이 넘는 분량. 뜻도 모를 어려운 한자어가 수두룩하기까지.

못 외우면 손바닥 맞고 늦게까지 남아 외워야했던.

2학년 땐가 담임선생님이 국민교육헌장까지 외워오라 했다.

이걸 다 외워 쌤한테 칭찬받았을 때 그 뿌듯함이란.

이걸 뭐라 해야할까....애국자 인증?

분명한 건, 교실에 남지 않고 친구들과 놀아도 된다는 기쁨이 더 컸다는.

어릴 때 외운 이 문장들이 아직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 기억하고 싶어도 어떤 건 잊혀지기도 하고

또 어떤 건 지우고 싶어도 끈질기게 남기도 한다.

 

작가 유시민은 자신의 글에서,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남녀가 서로 눈이 맞아 부부가 된 어느 날, 부모님의 찐한 애정표현과

어쩌면 아버지 몸속 알콜기운의 결과로 태어난 게 아닐까라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고, 그것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내가 원해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이왕 태어난 거

한사람의 시민으로 성실히 살면서, 내가 더 행복한 삶을 추구하겠다고.

 

햐...이거 뭐라 반박을 못하겠네. 나도 그렇게 태어난 거 같으니까.

물론 우리 부모님이야 아니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날 간절히 원해서 낳았다고. 진짜로?

뭐 요즘 애들이야 정말 원해서 낳았다 쳐도,

우리 부모님처럼 많이 낳던 시절엔,

집안의 대를 잇겠다거나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오직 날 잉태하기 위한 일념으로 그 뜨거운 밤을 보낸 건 아닐테고.

어차피 한번 태어나 언젠가 죽을 텐데,

사는 동안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을 찾고 싶을 뿐.


내 나라가 싫어서, 내가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떠나는 사람들.

가슴 한쪽엔 낯선 이국땅의 두려움을,

또 한쪽엔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미안함을 안고

쉽지 않았을 결정을 한 만큼, 부디 더 행복한 삶을 찾길.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사람 사는 세상.

진심 내 나라에 태어난 게 자랑스럽고, 이 땅에 사는 게 행복한 나라로

그래서 떠났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건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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