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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민의 서재
  •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 슈테판 츠바이크
  • 11,700원 (10%650)
  • 2009-05-04
  • : 4,867

지금껏 내 기억 속 칼뱅은 개혁가라는 긍정적 이미지였다.

그런데 츠바이크는 칼뱅을 독재자로 묘사한다. 비열하고 무자비한.

이 독재자에 홀로 맞선 인문주의자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

이 무모한 싸움을 시작한 카스텔리오는 자신을 

‘코끼리 앞의 모기’라 표현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먼저,

‘이거 개신교에겐 아주 불편한 얘길 수 있겠는걸’이란 생각이.

예전에 소설<다빈치 코드>가 나오고 영화로 만들자,

기독교에서 상영금지 가처분소송까지 냈던 거처럼.

아니나 다를까, 츠바이크도 책을 쓰면서 이런 오해나 반발에 

신경이 쓰였던 모양.

츠바이크가 그리고 있는, 독재자 칼뱅의 모습이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

첨 듣는 얘기라 나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무교인 나에게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 관심을 끄는 건 인간으로서 갖는 기본권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위해,

목숨 걸고 홀로 외롭게 맞서는 한 인간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자의 폭력.

설사 이 책이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게 아니라 소설이라고 해도,

츠바이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가톨릭의 성서해석과 다른 의견이란, 용납할 수 없는 불경죄였다.

자칫 이단으로 몰려, 화형까지 당할 수 있는 엄혹하고 암울한 시대.

중세암흑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엔, 사탄이나 마녀사냥 얘기가 자주 나온다.

종교적 권위를 지키고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애꿎은 사람과 여자들을 악마의 사탄이나 마녀로 몰아 제물로 삼는,

끔찍한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공포를 먹고 사는 권력이랄까.

 

가톨릭의 독단에 맞서 종교개혁을 추진했던 칼뱅.

그러던 그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난 뒤,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가톨릭보다 더한 지독스런 독재자의 모습으로 돌변한다.

자신의 성서해석과 다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세르베투스라는 한 인간을 이단으로 몰아 제거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는 비열한 짓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자신의 권위에 흠집을 낸, 이 괘씸한 자를 향해 편집광적인 복수심에 

불타올라, 온갖 핍박과 고문으로도 모자란 듯, 

마침내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만행까지.

이제 칼뱅이 지배하는 나라의 시민들은 자유를 잃어버리고

공포에 떨며 침묵한 채 살아가는, 죽은 시민의 사회가 된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모든 독재자에겐 같은 정신적 유전자가 흐른다.

바로 억압과 폭력의 DNA.

자신에게 반대하는 생각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다른 의견을 가진 자가 쓴 책을 불태우고, 말하는 것도 글 쓰는 것도 

금지한다.하지만 반대자를 침묵하게 만드는 걸로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가 살아, 같은 하늘아래 존재하고 있단 사실 자체도 받아들일 수 없는.

끝내 목숨까지도 빼앗아 영원히 침묵하게끔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듯이.

 

권위란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권위는 남들이 인정해줄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

억압과 폭력으로 복종을 강요해 유지하는 셀프권위란,

아무리 내 것이라 자기최면을 걸어 착각에 빠져 살려고 해도,

언제든 무너져 내려 사라질, 불안하고 위태로운 허상과도 같은 것.

독재자들도 자신의 권위가 정당성이 없다는 걸 잘 안다.

억압과 폭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 반증이라 할까.

그런다고 초조함과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고.

마침내 자신의 치부가 역사에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은폐와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한 사람을 영원히 침묵하게 하고

여러 사람을 오래 침묵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침묵하게 할 순 없다.

내리누르려는 억압의 힘이 크면 클수록,

튀어오르려는 반동의 힘도 커지는 법.

 

죄없는 한 인간이 화형대의 한줌 재로 사라져가는 걸 보면서도

독재자의 억압과 폭력이 두려워 모두가 침묵할 때,

타인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위해 변론에 나서는 카스텔리오.

자신에게도 닥칠지 모를 비열한 음모과 폭력의 위험 앞에

침착함과 온화함을 잃지 않은 채, 이성과 논리로 말과 글로.

말과 글밖엔 독재자에 맞설 수단이 없는 이 외로운 저항은 좌절되고

독재자 칼뱅은 역사의 승리자로 남는 듯했다.

그러나 영원히 묻힐 것 같았던 카스텔리오는 다시 살아나

역사의 진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칼뱅에 맞서는 어떤 카스텔리오’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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