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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메이션 오타쿠의 작은 비평공간

(1) <케이팝 데몬스 헌터>를 리뷰한 계기

<케이팝 데몬스 헌터>가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하였다. 역대급 기록으로 영화 조횟수가 상승하고, 각 음원차트에서 1위를 보이는 기염을 보였다. <케이팝 데몬스 헌터>를 보면서 느낀 점은 제목처럼 K-pop, Demon, Hunter라는 세 가지 단어를 보면 한국의 대중가요, 악마, 그리고 사냥꾼이다. 한국 음악으로 악마를 사냥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우연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영상을 어디서 본 것보다는 <케이팝 데몬스 헌터>에서 나오는 <Golden>이란 곡을 전 세계의 사람들이 도전하고, 우리는 중간에 알아먹는 가사를 외국인들이 몰라서 당황하는 이슈를 보게 되면서이다.

 

처음에 한국어로 말하는 영화인 것처럼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모든 것이 영어로 대사와 노레를 하고, 한국어는 주로 text, 즉 글자로 나왔다. 물론 한글 역시 단순히 표기하기 보단 루미가 치료받기 위해 방문한 한의원의 명칭이 Han의원이라 된 점에서 유머를 너머 작품에서 보여주는 한국이란 국가와 비한국이란 영역이 서로 섞이는 형태를 보여준다. 만일 보통 사람이라면 목이 아프거나 감기 기운이 있다면, 분명 호흡기 내과 또는 이비인후과로 가는 것이 정상적인 패턴이다. 하지만 작품에서 한의원에 간 점은 매우 특이하다.

 

<케이팝 데몬스 헌터>가 한국적 요소를 말하고 있다면, 동양 세계관이 반영되어야 한다. 작품에서 서사는 동양적인 서사 형태보단, 동양적 소재를 많이 사용하고, 그것이 한국인의 전통적 사상과 문화, 더 나아가 역사까지 녹아있다. 물론 노래 가사에서도 느껴지는 요소도 있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에서 가치관적 관찰력과 기술적 영역은 다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한국의 사상이 반영된 한의학(韓醫學)은 인간의 몸이 아픈 건 단순히 그 지점의 영역이 아니라 거대한 하나의 몸이 연계되어 있는 우주론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의 우주이고, 루미의 목은 그 우주 안에 작은 우주이며, 루미라는 우주 옆에 동료를 너머 지나간 시간과 인연까지 그 우주의 세계에 포함되는 것이다. 즉 인간은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라, 그 옆의 사람도 포함되고, 루미의 몸상태 역시 자신만의 세계만 아니라 주변 세계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 가치관은 서양에서는 잘 어울리기 힘든 가치관이다. 물론 시대가 변화하고 진보하면 인간의 가치관이 변경되지만, 서양적 기준에서 루미의 목은 감기약을 먹은 후 잠만 자면 되는 것이지만, 동양은 인간의 몸 전체를 보양하고 마음의 안정까지 얻어야 비로소 완치되는 것이다.

 

가령 미국에 처음 태권도(跆拳道)를 전파할 때, 대부분 미국인들은 태권도라는 화려한 발기술을 보며, 상대방을 싸우기 위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접근했지만, 막상 처음 접하는 것은 싸움의 기술보단 인간의 관계성이었다. 그리고 그 관계성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게 첫 걸음이었다. 지금도 한국에서 태권도 학원을 보면 무술도장보다는 동네에서 많은 어리거나 젊은 청춘들이 서로 어울리면서 심신을 단련하는 국민건강 프로젝트 실행 공간에 가깝다. 즐거움 마음으로 움직이고, 친구들과 학원 내 숙박 및 캠핑도 떠나고, 각종 이벤트들이 많다.

 

한국의 국기인 태극기(太極旗)에서 태극(太極) 모양은 음과 양이 대립되는 모양이 아니라 서로 안으로 들어가는 형국이다. 결국 정체된 가치관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 움직이며 살아가는 존재가 한국인들이다. <케이팝 데몬스 헌터>를 보면 전통적인 한국인의 모습이 조선사람을 보여주고, 다소 판타지적 요소를 반영한 무녀(巫女) 3사람이 등장한다. 이후 서구화를 거치며 시스터 그룹과 아이돌, 그리고 헌터릭스로 이어지게 된다. 무녀는 어느 특정인에게 부여되는 자리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리이다. 작품의 장르를 보면 모험, 액션, 뮤지컬 요소 등이 반영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마법소녀 장르라고 생각한다.

 

마법소녀는 어느 여성이 어떤 계기를 통해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면서 세상의 적을 제거하는 장르이다. 하지만 기존의 작품과 다르게, 20세기 <달의 요정, 세일러 문>이나 <천사소녀 네티> 등 악의 처단하거나 혹은 세상을 구원하는 마법소녀 장르와 다르고, <마법소녀 마기카 마도카>처럼 마법소녀가 마녀를 잡지만, 그 마녀는 마법소녀라는 충격적인 비극을 담은 것도 아니다. 특히나 강력한 마녀를 잡기 위해 강한 마법소녀가 태어나고, 그 마법소녀가 마녀로 변화할 때 그 마녀보다 더 강력한 마법소녀가 나와서 끊임없이 재앙의 영역만 커지는 저주의 세계관은 아니다.

 

<케이팝 데몬스 헌터>에서 루미는 마법소녀 중에 하나인 무녀(巫女)와 악령의 조화로 태어난 비운의 주인공이다. 태어날 때 인간인 줄 알았지만, 자신의 피에 악령이 숨어 있었다. Demon이란 악령은 사실 한국 전통적 관념에서 귀신(鬼神)에 가깝다. 하지만 귀(鬼)를 제거하면 신(神)이 되므로, 한국에서 귀신과 신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존재이다. 한국의 전통설화에서 <장화홍련전>에서 억울하게 죽은 자매가 담력이 높은 사또에 의해 원한을 풀고 아름다운 소녀로 모습으로 돌아와 성불(成佛)하게 된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불교의 교리로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케이팝 데몬스 헌터>는 간단한 이야기처럼 보여도 간단하지 않은 이유가 한국인의 정서적 세계관이 깊이 갈려 있기 때문이다.

 

(2) <케이팝 데몬스 헌터>, 주인공 헌트릭스 3명과 진우의 의미는 무엇인가?

작품에서 주인공 루미이고, 그 다음으로 미라, 조이이다. 모두 여러 가지 마음에 근심이나 지난 세월의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다. 루미는 자신이 인간인지 아닌지에 대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고 미라는 분명 평온한 집안에 태어난 여성이나, 가족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 그리고 조이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물론 등장인물 순은 다르게 해석하더라도, ⓵ 미라는 가족과 나, ⓶ 조이는 한국인과 미국인(서양세계), ⓷ 루미는 인간과 비인간으로 넓어진다.

 

인간이 태어나면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은 가족이다. 가족은 원래 하나였다가 분리되는 존재이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존재가 하나였지만, 태어나면서 분리가 되어버린다. 가족은 자신의 존재성이란 가치관에서 부정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미라의 경우 가족의 존재성을 부정하지 않으나, 관계성에 대해 크게 부정한다. 이 작품은 감독과 각본을 맡은 매기 강이란 분이 한국계 캐나다인 여성인 점이 클 것이다. 어린 시절 HOT 팬이란 점에서 1970년대 말 또는 1980년 초반에 태어났을 것이며, 당시 한국사회는 여전히 가부장적 가치관이 강했다. 매기 강의 그런 반발심은 미라라는 캐릭터에 큰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즉 가만히 있지 않은 여성, 주도적인 여성, 반항하는 여성을 투영하였다. 물론 작품을 보면 혈연적 관계인 가족 대신 헌트릭스 동료에게 큰 관계성을 보여주는 점에서 가족을 대체할 수 있으나,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이런 점은 사자 보이즈의 리더인 진우로 통해 볼 수 있다. 진우는 조선시대 광해군 전후의 인물로 보인다. 어머니와 여동생하고 같이 살고 있지만, 집이 가난하여 추위와 배고픔에 허덕이다. 하지만 저 당시 조선의 백성들은 대부분 추위와 배고픔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사실 가족에 대한 애절한 마음은 진우만 아니라 수많은 민중의 역사이다. 진우의 한은 단순히 진우만의 한이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핍박을 받은 사람들이 현재까지 단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받고 있는 점이다. 얘를 들어 몇 년 전, 제주도에서 4‧3 추모제가 열렸다. 이때 무대 행사장에서 할머니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여대생이 나왔다. 2020년대 현대사회에서 1947년은 아득히 멀다. 그 여대생은 할머니의 사연을 소개한다. 4‧3 때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학살되는데, 그 여대생의 할머니는 당시 어린 소녀였고, 그 소녀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수많은 가족들이 바닷물에 수장되어 억울하게 죽었다.

 

그 소녀는 육지로 나가 다시 제주도로 돌아왔지만, 음식으로 생선을 절대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 생선이 부모와 가족들의 살을 뜯어 먹고 살아갈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여대생은 그 슬픈 일이 70년 넘었지만, 가족의 고통을 온 몸으로 받았기에 남은 인생을 그 한을 담고 살아야 한다. 물론 한국전쟁과 일제강점기 등의 역사도 그렇고, 현재 한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1589년 일어난 기축옥사에 대한 한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인간이 가진 한(恨)이란 것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진우의 소원은 자신의 기억을 지우는 것이다. 자신의 기억을 지우는 것은 한을 잊는 것이고, 한을 잊게 되면 그가 이때까지 살아온 기억, 더 나아가 슬프지만 가족이란 존재까지 사라진다. 가족을 자신의 굴레로 생각하는 미라, 가족의 비극으로 자신의 기억이 굴레로 만들어진 진우는 대립적 가치관을 지닌다.

 

조이는 어린 시절 미국에서 살아온 교포이다. 현재 한국의 위상이 높기에 세계 어디로 나가도 크게 위축될 일이 없어지고 있으며, 미국의 LA한인타운이 있을 정도로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이주생활은 매우 어려웠다. 일제의 잔인함을 피하기 위해 아니면 노예처럼 팔려나가거나, 강제로 이주되는 비극을 겪었다. 그들에게 고향을 버리고 온 한이 서려 있으며, 낯선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힘겨운 삶을 한으로 받아들였으며, 미국인 중 주요 세력으로 자리잡은 백인 또는 흑인에 비해 신체적으로 왜소하다. 조이의 경우 체구가 작은 소녀이고, 부모는 그 힘든 이민생활을 겪은 세대이다.

 

미라처럼 가족의 세계에서 벗어나면 사회지만, 적어도 한국사회는 같은 민족이다. 하지만 미국사회는 한국인은 여러 민족 중에 하나이고, 주류 사회의 일원이 아닌 비주류 세계의 일원이다. 여기에 진우를 대입하면 진우는 조선시대 양반 신분층이 아닌 평민 계층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평민 계층은 대부분 농민이나, 농토가 없으면 장사 또는 노동력으로 살아가겠지만, 진우에겐 그런 경제적 여유와 기회가 없었다. 우연히 비파라는 악기를 잘 다루어 궁궐에 가고, 가족도 같이 들어가게 되어 안정적 생활을 했지만, 궁궐생활에 너무 빠져든 바람에 가족을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21세기 진우의 모습과 조선시대 진우의 모습은 같다. 즉 진우가 사망한 시점의 나이에서 21세기 외모로 등장한다. 한국에서 사람이 죽어 조상신 또는 귀신이 되면, 그가 죽은 시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진우는 젊은 나이에 모습을 잃었고, 많은 사이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조반정에서 희생될 가능성이 높다. 인조반정 시 시골에 학문만 연구하던 정인홍이란 인물을 참수했는데, 정인홍은 광해군 시절 영의정까지 올랐고, 그가 죽을 때 나이가 80이 넘었다. 조선시대 때 죄인이라도 나이가 많을 경우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영의정까지 지냈지만, 반정 세력의 증오로 인해 광해군과 가까운 인물은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진우의 죽음 광해군 옆에서 총애를 받은 이유로 죽게 된 설정으로 보인다. 비주류에 속한 인물이 결국 비극적 죽음과 가족의 이별로 Demon, 즉 한국에서 악령보단 귀신이 되었다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한국에서 사람이 억울하게 한을 품고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죽은 자가 귀신이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부모 또는 가까운 가족이 사별(死別)하면, 삼우제(三虞祭), 49재(齋), 더 나아가 3년상을 치룬다. 죽음은 자신만의 고통이 아니라 주변의 아픔을 남기며, 그 슬픔을 이기기 위해 제사(祭祀)를 지낸다. 축제(祝祭)의 제는 제사의 제와 같다. 슬픔을 애도하지만, 그 슬픔이 승화하여 기쁨으로 이어진다. 기쁨은 흥(興)이고, 한(恨)스러움과 반대되는 지점이다. 그럼 슬픔 한을 품은 것을 기쁜 흥으로 승화하는 일이 무녀(巫女)이고, 헌트릭스에서는 루미의 숙명이다.

 

루미는 고아로 부모 없이 지낸 외로운 소녀였다. 물론 어머니의 지인이며, 자신을 키워준 셀린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은 그저 즐겁게 살아가면 되지만, 성인으로 성장하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고민이 빠진다. 정체성이란 결국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데, 그 시작점이 누구로부터 이어진 것인가를 고민한다. 어머니는 훌륭한 뮤지션 겸 무녀이지만, 아버지는 악령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악령은 육신을 가지지 못하지만, 한국의 신화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남성)들이 현실 여성과 조우하여 잉태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다. 루미의 아버지가 악령이지만, 인간이 아닌 형이상학적 존재에서 보자면 주몽의 태생과 유사하다. 단지 주몽은 알에서 나온 난생설화(卵生說話)이나, 적어도 인간과 비인간의 만남은 인간으로 이어진 점은 같다.

 

루미를 이해하는 것은 진우로, 인간인 자가 악령이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에서 한을 품고 죽을 경우 귀신이 되고, 영미문화에서 영혼의 ghost보단 악령인 demon으로 나타난 점에서 사실 진우가 속해 있던 악령의 무리들은 처음부터 악령이 아닌 인간이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바를 것이다.

 

(3) <케이팝 데몬스 헌터>, 셀린의 황금(黃金) 혼문(魂門)은 무엇인가?

셀린이 주인공 루미에게 말한 황금 혼문이 완성하게 되면 루미의 고민이 해결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황금 혼문은 무엇인가? <케이팝 데몬스 헌터>의 OST곡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완성도가 높은 곡은 바로 <Golden>인 듯하다. 아이돌처럼 만든 헌트릭스라고 해도 가사를 보면 그 의미가 매우 깊다. 흔히 인기를 위한 러브 송으로 깔려진 대중가요 장르에서 인간의 고뇌를 다룬 곡은 그렇게 많지 않다.

 

혼문은 혼이 오고 가는 입구이다. 그런데 혼이란 존재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 좋은 혼은 천상으로 가는 신적인 영역이고, 또는 나쁜 쪽으로 가는 악령의 영역이 있다. 신과 악령의 영역이 이분화 되는 게 아니라 그 세계가 깨어지는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다. 음과 양이 서로 어울리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태극의 흐름으로 가는 것이다. 서구적인 영상미, 더 나아가 슬랙스틱한 연출은 분명 서양의 기호에 맞추었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미학적 영역은 한국의 전통사상이 담겨져 있다. 대비되는 존재를 배척하는 게 아니라 그 너머로 가고자 하는 매력이 작품에 녹아있다.

 

셀린이 루미를 만나는 장면에서 서낭당이 나온다. 서낭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목(神木)이고, 우리는 신처럼 성스럽게 여기는 나무에 제단을 만들면 신단수(神檀樹, 神壇樹)라고 한다. 특히 제단의 단과 박달나무의 단은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박달나무의 단은 단군(檀君)을 의미한다. 환웅(桓雄)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 신단수와 큰 관계성이 있다. 결국 신단수는 신을 맞이하기 위한 인간의 무속(巫俗) 공간이다. 흔히 우리가 점이나 치는 점쟁이 영역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제단인 것이다.

 

셀린이 왜 황금 혼문을 말하는 것일까? 왜 헌트릭스와 그 이전의 무녀는 3명일까? 그것은 한국의 전통사상에서 비롯된 천지인(天地人)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하늘과 땅은 중간이다. <케이팝 데몬스 헌터>에서 땅은 악령의 지하세계이다. 빛도 없고 절망만 가득하다. 무녀로 등장하는 헌트릭스는 인간이지만, 하늘의 힘을 받아 악령을 퇴치한다. 작중에서 하늘의 존재는 1번도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과 땅의 존재만 등장한다. 하지만 무녀는 하늘의 힘을 사용하여 활약하는 점에서 황금 혼문의 시대는 도래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혼문의 시대는 음양과 양의 조화이다. 노래 제목과 가사를 보면 <Golden>과 <What It Sounds Like>에서 그 관점을 잘 보여준다. 어둠과 빛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이 가는 모습, 이중적인 모습에서 방황하는 그 모든 게 자신이란 사실을 말이다. 태극의 음양,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말한 조화, 한국의 전통사상인 천지인까지 말이다. 겉보기에 단순명쾌한 점이 서구인들이 좋아하지만, 그 이면에 감성과 인간이 가진 원초적 감정은 세계를 이끈 원동력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기 강 감독을 비롯한 많은 스텝들의 노력도 있겠지만, 매기 강 자신부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고, 특히 노래 중에 <Golden을 부르는 뮤지션 EJAE 역시 그런 자신의 정체성을 노래에 담은 것 같다. 그녀는 미국에 살아가는 뮤지션이나,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국적으로 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모호한 요소가 있지만, 민족으로 한국인이다. 그러나 완벽한 한국인은 아니다. <케이팝 데몬스 헌터>에서 전통세계관은 나오지만, 의상과 언어, 생활양식은 완벽한 서구화이다. 한국이라 하지만 한국적 요소가 서구화로 인해 뒤죽박죽되어 가는 세계이다. 그러나 한국이란 소재는 주요한 시간과 공간이 된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그 과거에서 시작한 조선인의 한국인이란 사실에서 진우는 조선인이지만 조선인이란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고, 헌트릭스는 과거의 조선인처럼 안 살아가지만, 과거 조선인 무녀의 가치관은 이어간다. 한국화(韓國華)와 탈한국화(脫韓國華)의 세계에서 한국인의 신화는 계속 변화하여 간다. <케이팝 데몬스 헌터>의 성공을 두고, 제작진은 “꿈만 같다”라고 한다. 신화(神話)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가치관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꿈은 결국 성공의 신화를 이루었고, 더 나아가 K-culture의 신화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한국은 20세기 미국의 2차 대선 승리로 얻은 국가라고 말이다. 국제학적 관점에서 말하면 옳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보여주고 있는 K-culture는 미국이 가져다 주지 않았다. 조선과 한국에 대한 독립과 광복을 염원하고, 그 이후의 세상을 그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오랜 숙제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이 세종의 훈민정음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독립운동가 중 주시경 선생과 조선어학회의 노력으로 성장했고, 일상에서 느끼는 한국의 전통문화는 우리의 삶에서 지켜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고통과 슬픔이란 한에서 시작하여 흥이란 성공으로 승화했다. 단지 <케이팝 데몬스 헌터>를 제작한 감독과 노래를 부른 뮤지션, 성우들은 조선의 후예인 한국인이지만, 그들의 국적은 타국으로 되어 있고, 영어라는 공용언어로 한국을 바라본다. 이방인이 아니지만, 이방인이 되어버린 자들이 스스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찾아간다. 태극은 음과 양이 끊임없이 돌고 돈다. 국제화 세계에서 음양의 흐름을 계속 일어나고, 결국 우리는 변화를 맞이하면 전통을 지키고 또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낸다.

 

결국, 셀린의 황금(黃金) 혼문(魂門)이란 과거부터 현재 더 나아가 미래까지 모든 것들을 소화하고 변화하여 살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정형(正形)화 되는 게 아니라 계속 움직인다. 돌고 도는 세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잊거나 부정하거나 언젠가는 다시 그 모습을 인정하는 게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미학(美學)이다. 루미를 보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미라와 조이 역시 그러하다. 한국은 기존 전통성을 해체하여 20세기 근대화로 나갔지만, 21세기 탈(脫) 근대화(近代化)적인 모습으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세계화 또는 글로버리즘은 모두 같아 보일 수 있지만, 그 근원이 서로 다른 개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존재성은 사라진다.

 

(4) <케이팝 데몬스 헌터>와 K-culture의 미래

<케이팝 데몬스 헌터>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적인 요소는 배경과 소재로 반영했지만, 주인공들의 삶과 노래 가사에서는 한국인의 운명을 절실히 보여주었다. 미국 애니메이션이지만, 성우들은 한국계 미국인 대부분이란 점, 루미의 노래를 부르는 EJAE조차 한국계 미국인이다. 서양의 눈으로 보는 한국인지, 서양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이 본느 한국인지 모호한 경계에서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다. 기존 애니메이션은 미국의 디즈니메이션, 일본의 저패니메이션이 중심이었다면, 이번 <케이팝 데몬스 헌터>은 한국애니메이션이 아니지만, 한국을 바라보는 미국애니메이션이다. 디즈니의 영역에서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자본시스템이 도입으로 큰 격동을 맞이한 셈이다.

 

넷플릭스의 존재는 <킹덤>에서 큰 전환점을 보여준다. 임진왜란과 경신대기근을 소재로 하여 당시 조선의 북방의 여진족을 등장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고통을 받는 조선시대를 그려내었다. <킹덤>에서 좀비는 작품에서 큰 호응성을 얻었고, 넷플릭스는 미국의 대규모 자본업체지만, <킹덤>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점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역사는 그저 우리 안에 갇혀있는 영역이 아니라 매우 새로운 콘텐츠로 성장했다. 서구사회의 문화에서 그동안 동양문화는 대부분 중국과 일본이었다. 특히 중국의 소림사와 쿵푸, 일본의 사무라이와 닌자는 단골 메뉴였지만, 조선의 맛을 중국과 일본하고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영화 <킹덤>에서 갓을 쓰고 칼을 잡고 싸우는 세자, 갓을 쓰고 영혼을 사냥하는 <케이팝 데몬스 헌터>의 사자 보이즈를 보면 서구인은 이때까지 보지 못한 것에 흥분했다. 우리에게 한복은 과거의 것이고, 엄청난 큰 갓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갓을 쓴 남자들은 어느 순간 세계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렇게 큰 넓고 긴 챙을 가진 모자를 쓰는 민족은 세계 어디를 봐도 많지 않다. 게다가 한국인의 감정은 매우 격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매우 조용한 모습도 보여준다. 기복의 흐름이 매우 특이하다. 정서적 요소에서 한과 흥이 교차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케이팝 데몬스 헌터>의 첫 장면에서 악령들이 조선의 백성들을 습격하는데, 이때 무녀들이 백성들을 구출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다. 대부분 조선의 백성은 추위와 굶주림, 군역과 외세의 침입으로 항상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런 슬프고 괴로운 감정은 비관적으로 삶을 살아가며, 그 서러움과 비참함이 한으로 남는다. 만일 가뭄과 홍수로 마을에 심한 흉년과 기근이 들면 마을주민들은 모두 공포와 증오로 타인을 경계하고 무서워한다. 악령이 침투는 바로 인간의 불안에서 기인한다. 무녀의 존재는 공포와 증오로 괴로워하는 백성을 위로하고 마음을 안정화 시키는 것이다.

 

그들의 손에 무기가 잡혀 있지만, 그들은 노래와 춤을 추며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이 우울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음악을 듣거나, 춤을 추는 경우도 많다. 더구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인종, 나이, 계급, 성별 등을 초월한다. 무녀는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치유하고, 서로 같은 마음으로 즐거움을 안겨준다. 한을 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게 음악이란 영역이다. 단순히 소리만이 아니라 율동과 리듬, 멜로디 등이 가미하여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진우도 루미의 진심어린 노래를 들으면, 가족을 잃을 때 느낀 비참한 기억에 시달리지 않는다.

 

가족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루미의 노래는 무녀로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한을 승화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루미 역시 괴로운 삶을 살아온 게 아니다. 자신이 부모를 여의고, 가까운 친구에게 말하지 못할 과거의 아픔을 몸에 새겨져 있다. 자신이 겪은 아픔을 알기에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케이팝 데몬스 헌터>가 부르는 <Golden>을 들으면 신나는 댄스곡이지만, 그 음성과 가사는 신나기보단 슬픔을 깊이 스며들었다.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 상업적 성공은 중요하지만, 이 곡에는 상업적 성공을 원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이 느끼는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다.

 

<takedown>이란 곡을 들으면 기존에 거대화 부조리에 당한 사람이 거기에 반항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런다고 문제는 해결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가사와 음악성은 작품에서 해당 장면에서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 곡이 오히려 기존 서구사회의 스타일에 가장 가깝다. 작품 마지막 악령의 왕은 물리칠 때의 <What It Sounds Like>을 들어보면 서구사회적 이분법을 넘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때서야 관객이 그동안 사자 보이즈에게 걸린 최면도 풀리고, 진우에게 저주처럼 걸린 괴로움도 사라진다. 내가 가진 아픔을 이해해야지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케이팝 데몬스 헌터>의 성공은 기존 한국의 아이돌이 보여준 K-pop하고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음악장르에서는 큰 차이는 없지만, 가사 내용과 목소리에서 들리는 간절함은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콘텐츠의 가치이고, 익숙하면서도 낯설면서도 새롭지만, 세련된 문화로 다가온다.

 

K-culture 상징이 되어버린 <케이팝 데몬스 헌터>, 뮬론 로제나 BTS 같은 뮤지션은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K-pop 장르는 맞지만, K-pop에서 한국인이란 정체성이 얼마나 깊이 있었는지 생각하면 <케이팝 데몬스 헌터>에 비교하면 차이난다. 로제의 <아파트>가 윤수일의 곡에서 리메이크하고, BTS가 한국의 이야기를 곡에 실어 새로운 감각을 전 세계에 흘러가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한국의 전통성보다는 한국의 근대를 지난 현재성에 가깝다. 그러나 <케이팝 데몬스 헌터>는 한국의 근대성(기존 전통문화의 해체)과 현재성을 넘어 탈 근대화적으로 다가왔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의 문화는 타국이 해방해주지 않았다. 식민지국가였던 일부 국가는 자신의 언어를 모두 소실하여 영어 또는 프랑스어 등의 서구언어를 구사한다.

 

하다 못해 일본의 오키나와와 류쿠왕족이 있었음에도 겨우 오키나와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것은 역사와 문화의 유산보단 관광 상품화로 변모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점은 미국의 화와이도 그러하다. 전통문화가 삶에 흔적에 새겨져 내려오기보단 상품으로 되어 유지되는 비극은 미국 인디언 부족도 마찬가지이다. 근대화란 가치 아래 제3세계의 문화와 역사는 소멸되었지만, 이제는 반대로 그 3세계가 역으로 새로운 문화의 원천지가 되어간다. 왜냐하면 세계 어딜 가도 그런 장면과 정서를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높고 거대한 마천루(摩天樓)의 건물은 기술과 자본력으로 만들 수 있지만, 안동 하회마을의 초가 군락은 만들 수 없다. 역사 수 백 년이나 되는 서원이나 서낭당 역시 만들 수 없다.

 

자신들이 모르기에 미스터리로 남은 문화이기에 새로운 콘텐츠로 발견할 수 있다. 기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아이돌 내지 마법소녀에서 한계성은 너무 일본이란 국가를 강조하거나, 아니면 아예 일본이란 국가를 제척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에서 마법소녀의 공간이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로 변경해도 무리가 없다. 주인공의 머리색이 분홍, 노랑, 파랑, 녹색 등으로 동양인의 범주에서 벗어난 게 많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필수는 아니나 많이 등장하는 요소가 축제이다. 기모노를 입고 축제 거리를 거닐며 노는 모습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케이팝 데몬스 헌터>에서 한국의 미적 요소는 클리셰적인 요소로 보여주기보단 근본을 이루는 영역이다. 클리셰적인 요소는 차라리 그동안 영웅적 서사에 가깝다. 아니면 20세기까지 식민지국가에서 분단국가인 개방도상국이 선진국이 되어 큰 소리를 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 기나긴 역사와 시간에서 많은 한국인은 한을 품었지만, 서로간 위로 하면 흥을 찾아가며 살아왔다. 지나간 시간은 고통스러워도 내가 아닌 내일을 살아가는 후예들은 더 좋은 살아갈 것이고, 그 희망이 흥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작품에서 셀린이 상당히 뛰어난 현대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서낭당에서 결혼하지 않은 채 자신을 희생하며 기달린다. 그녀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대신 루미의 삶을 만들어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자신의 삶이 한으로 맺혔지만, 루미로 통해 한을 풀 수 있는 흥을 말이다.

 

이건 여담이나, 한국여성의 비참한 인생이 생각난다. 어떤 사정으로 미국으로 이민 간 여성이 현지 남자와 결혼하여 애를 낳았다, 그녀가 애를 살해하지 않았지만, 어떤 사고로 인해 애가 죽었다. 그 여자가 한국어로 말하기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어.”라고 절규한다. 이 말을 들은 한국인이라면 그녀가 자식을 옆에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한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재판정은 그녀의 말을 번역하면 “I killed a child”이라고 해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유죄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더 소름 돋는 것은 그 유죄를 받은 그녀의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한국은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이른바 정(精)이라는 감정이 옛날보다 메말라 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이라는 자체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나 경신대기근에서 보여준 비인간적 모습이 기록된 사서가 더 끔찍하다. 서로 다른 사람의 자식을 죽여서 바꾸어 잡아먹는 기록이 나온다. 요새 부모가 살기 힘들어 자식을 죽여 먹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런 일이 흔한 일이다. 물론 자신이 원하여 살인을 하고 자식을 팔고, 인육을 먹은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약자들의 몸부림이다. 윤리적이나 도덕적으로 용서받지 못한 일이나, 우리가 그들을 손가락질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자식 부모 관계는 천륜(天倫)이라고 한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많은 한을 품고 살아 왔는가?

 

이제 그 원망스러운 한을 잊는 게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정신적 상처, 트라우마는 우리의 앞길을 막는다. 그 길을 넘어가기 위해 흥겨운 음악과 리듬이 필요하다.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걸어갈 수 있는 삶의 목적이 생겼기 때문이다. K-culture의 미래는 바로 새로운 콘텐츠이나, 그동안 우리가 억눌린 것을 이겨내어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것을 투영한 문화이다. 어느 세계의 국가와 민족이 몇 천 년 동안 외세에 의해 침략받고, 멸망하고, 독립하고,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 살아 왔는가? 그 와중에 자신의 문화가 소멸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도저히 그런 역사와 문화의 시련과 극복을 겪은 적이 없기에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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