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해 말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이긴하다. 알듯 모를듯한 일본 혹은 가깝고도 먼 일본,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나 그 역사에 대해서는 막상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일본. 이제는 극일(克日)도, 반일(反日)도 넘어선 차원에서 일본에 대해 배우고 알아야 하는 시점에 다다른 것은 아닌지 한번쯤 누군가가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물을 읽고 싶다. 기왕지사 일본에 대한 책을 읽고 서평을 올렸으니 좀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 역사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책을 소개해보겠다. 새길에서 나온 "상식 밖의 일본사"란 책이다. 새길에서는 "상식 밖의~"란 시리즈를 통해 "예술사, 과학사, 동양사, 한국사" 등을 펴낸 바 있다. 이 책 "상식 밖의 일본사" 역시 지난 1995년에 나왔으니 어느새 10년 전 책이다. 그 가운데 예술사와 과학사, 일본사까지 이 시리즈 가운데 3권을 읽었는데 세 권 모두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책이었다. 이 책 일본사만 하더라도 300여쪽에 약간 덜 차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속이 단단하게 여문데다 가격마저 무척 저렴하다. 물론 지질면에선 요즘 화려한 책들이 워낙에 많으므로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겠다. 그럼 좀 어떤가. 내용이 튼실하면 되었지 않나.
"상식 밖의 일본사"는 모두 58개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일본 역사에 대한 대중적 개론서이다. 58개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고대 일본부터 현대의 일본까지 두루 아우르게 되어 있는데, 이런 구성은 자칫하면 중요한 에피소드들만 나열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저자 안정환의 전문적 식견과 글솜씨가 어우러져, 거기에 대중적으로 조절된 난이도로 인해 쉽게 읽고, 책을 덮었다가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아 다시 손에 쥐게 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흔히 손쉽다는 말에는 안 좋은 의미도 포함되기 마련인데, 이 책의 경우엔 손쉽다는 말의 긍정적인 의미만 십분 발휘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58개의 에피소드들은 이런 것이다. "1. 일본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게 되었을까."를 통해 선사 시대 일본의 역사를, "3.쇼토쿠 태자는 최고의 인텔리"에서는 쇼토쿠 태자 한 사람을 통해 씨족간 갈등을 제압하고, 고대 천황제의 기틀을 확립하는 일본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외에도 일본인들의 정신 속에 깊이 남아 있는 미나모토노 요시쓰네, 왜구, 우리에게도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가게무샤"의 시대 배경으로 익숙한 "다케다 신켄과 겐신",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의 역사를 아우르는 "조선통신사", "가난 때문에 아이를 죽여야 했던 농민들", "전통은 살아있다 - 남녀혼욕"과 같이 당시 일본의 풍속사를 엿볼 수 있는 대목들도 있다. "뇌물로 더럽혀진 정신" 같은 대목에서는 근대 일본이 부국강병을 추구하면서 일어났던 유명한 지멘스 뇌물 수수사건(이는 훗날 다나카 전 수상의 '록히드 사건'에서 반복된다), 쌀파동, 야구와 영화를 통해 수입된 서구 문화가 어떻게 일본을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이처럼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하나하나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 역사의 결과 맥을 살펴볼 수 있도록 섬세하게 꾸며져 있다.
대중적인 글쓰기가 성공적이기는 생각외로 매우 어려운데, 이 책은 그 어려운 난제들을 두루 잘 해결하고 있다. 혹시 일본에 대해 알고 싶은데 너무 어려운 책은 읽고 싶지 않은 분들이나 일본의 역사 만화들을 좀더 재미있게 읽고 싶은 분들은 물론 좀더 폭 넓게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접하고 싶은 분들에게도 권해드리고 싶다.
* 이상하게 새길에서 나온 책 전권이 알라딘에서는 품절로 나오고 있다. 꽤 여러 종의 출판물을 내고 있는 곳이자, 예전에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를 냈던 곳이기도 한데... 신간이 안 나오는 건지 하여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시중 서점들을 잘 뒤져보시면 건지기 어렵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