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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wmaha님의 서재
  •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 권내현
  • 11,520원 (10%640)
  • 2014-09-01
  • : 1,851

한국사회에서 혈통에 대한 관심은 뿌리 깊다. 학맥, 인맥, 지연 등 여러 사회자본 가운데 친인척이나 문중 등을 기반으로 한 혈연 역시 주요한 사회자본으로 한국사회에서 기능하고 있다. 성묘철이 되면 붐비는 성묘객들로 고속도로가 막히고, 여전히 족보가 활발하게 편찬되고 있다. 인기를 끄는 ‘막장’드라마들에서 잊고 살았던 친자가 등장하면서 기존에 있던 관계에 긴장과 갈등을 빚는 모습은 낯익은 장면이다. 그런데 이렇게 혈통(특히 부계 혈통)과 뿌리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은 아니다. 그 출발은 조선 후기 정도로 잡을 수 있다. 최근 역사비평사에서 출간된 권내현 교수의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은 그러한 과정을 한 가계를 통해 압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형태로 잘 보여준다.

 

책에서는 경남 단성에서 다량으로 보존된 단성호적을 주 자료로, 한 양반가의 노비에서부터 출발하여 노비의 후손들이 노비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중간층, 나아가 양반층으로 편입해 들어갔던 200여년 동안의 과정이 잘 묘사되고 있다. 관청이나 개인의 소유물로 취급받았던 노비들은 혼인을 하더라도 주인집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노비 부부가 각기 주인이 다를 경우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의 주인에게 노역이나 현물을 바쳐야 했다. 각종 천대를 받았던 노비들은 조선 후기 사회의 변동과정에서 도망가거나 자신들의 힘을 키워서 노비 신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갖가지 노력을 다했다. 수봉의 가계는 자신이 모은 재산을 통해 노비라는 굴레를 벗어나는 길을 택했다.

 

자연재해대책으로 국가에서 필요한 구휼 비용을 마련할 때, 수봉은 재산 일부를 바치고 노비에서 평민으로 인정받았다. 비록 노비 신분이었지만 국가에 많은 곡식을 바칠 정도로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신분 해방에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주인에게 복종하면서도 틈틈이 토지를 경작하거나 다른 경로를 통해 재산을 늘려나갔다. 이어서 당시 본관과 성씨가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노비 출신의 수봉 일가는 김해 김씨를 성씨로 삼았고, 평민으로서의 행세를 시작했다. 그러나 평민이 되자 그들에게 다가왔던 것은 군역이라는 세금 부담이었다. 평민으로서의 만족감보다는 양반이 아니어서 부담을 지게 된다고 느꼈을 때, 그들은 평민이라는 신분을 또 다른 장애물로 여겼다. 또 한 번 신분 상승을 꾀하게 되는 동기였다.

 

수봉의 후손들이 곧바로 양반이 될 수는 없었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중간층으로의 진입을 꾀하였다. 그들은 호적에 중간층(업무, 업유 등)으로서의 직역으로 기록되었고, 이로써 점차 군역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수십년이 지나면서 수봉의 후손들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유학(幼學)’이란 호칭을 누리게 되었다. 이때가 19세기 중엽이었고, 수봉이 노비로부터 벗어난지 2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 과정에서 수봉의 후손들은 조상들의 직역을 새롭게 윤색하는 작업을 벌이면서 노비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지워가기 시작했다. 또 김해 김씨에서 당시 권세가였던 안동 김씨로 본관을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부계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양반들이 활용했던 입양 제도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족보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지역사회에서 양반으로 인정받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전통 양반 가문들은 이들을 경계했고, 신분제 질서는 여전히 강고했다. 수봉 가문이 실질적인 양반으로서 행세하려면 후손들 중에 과거 급제자가 배출되거나 지역에서의 학문적 업적을 쌓아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다음 목표는 자제들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교육과 학문의 세계로 입문하는 욕망은 근대 이후 더욱 활발하게 분출되었다.

 

노비들은 신분 해방을 꿈꿨고, 평민으로 성장한 뒤에는 군역 등 불평등한 세금 부과로부터 탈피하고자 했다. 나아가 양반이 되기 위해 양반들의 가족질서를 모방하고 전유해갔다. 하층민들의 신분 상승 노력을 기존의 양반들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수봉 가문은 빈틈을 파고들었고,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 물론 이 가운데 훨씬 많은 이들은 좌절을 경험했다. 이렇게 수봉 가문이 행한 모방은 전 사회적으로 일어났고, 그러한 신분 상승의 욕망은 근대 사회에 이르러 신분제가 폐지되는 데 밑바탕을 이루었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은 노비와 일반 평민, 양반 사이의 길항 관계를 잘 보여준다. 양반 중심의 신분제 사회가 점차 붕괴되어가는 과정을, 양반들의 문화(부계 혈족의 강화, 가문의 윤색, 족보 편찬 등)와 이를 모방하려는 평민과 노비들의 행위를 통해서 잘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노비와 양반의 가계를 더듬어가면서 조선시대의 가문과 가계, 가족관계, 그리고 성씨 등에 대한 상식을 넓혀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노비의 이름에 왜 수많은 돌쇠와 마당쇠가 등장하는지, 개똥이의 한자식 표기가 무엇인지 등에 관한 이야기도 독자에게는 흥미를 끌만한 부분이다.

 

오늘날 자기의 가문이 아주 고대부터 오랫동안 계속 이어져왔다는 환상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불과 2~300여년 전만 해도 대다수의 가문은 이 수봉 집안과 같은 운명에 놓여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환상을 깨주고 있다. 그렇지만 저자도 에필로그에 언급하듯이 오늘날 경제력과 학력은 서서히, 아니 이미 특권화하였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거의 불가능한 시대에 아직도 많은 이들은 닫혀가는 문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문 안으로 들어가는 자보다 못 들어가는 자들이 훨씬 많다. ‘될 놈 될 사회’는 너무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인 사회다. 또 다른 ‘신분’사회의 출현을 가만 두고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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