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일제의 국권 침탈과 민족의 저항’이라는 인식틀이 한국 근대사 연구와 역사 교육에 자리 잡고 있는 점을 거론하면서 글을 시작하고 있다. 그런 인식 속에서 백 년 전 망국의 기억을 대물림한 채, 망국의 원인을 깊이 있게 따져보지 못했다는 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왜’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는지를 장기 구조사적으로 해명할 것을 제언하면서 우선 일제가 대한제국을 ‘어떻게’ 식민지화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일제의 국권 침탈 과정 속에서 대한제국의 지배 세력이 보여준 정치적 동향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일제의 국권 침탈과 민족의 저항’의 틀 속에도 ‘저항’과 ‘동화’의 양 측면이 공존했던 정치사가 진행되었다는 결론이다.
저자가 서술의 방향을 제시한 것처럼 이 책에서는 첫째, 러일전쟁 이후 일본에 의한 ‘한일의정서’ 체결, 고문을 통한 내정 간섭, ‘을사늑약’ 체결, 통감부 설치와 내정 장악, 대한제국 병합 등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 과정을 세밀하게 소개하고 있다. 각종 조약과 협약의 내용들과 러시아와 미국 등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일본이 국제 정세 속에서 어떻게 대한제국을 점령해갔는지 잘 묘사되어 있다. 둘째, 고종을 중심으로 대한제국 집권층이 국제법(만국공법) 인식 속에서 밀사외교의 전개와 국제사회에서의 구명을 호소하는 노력과 그 한계가 잘 서술되어 있다. 셋째, 국권 회복의 길목에서도 일제 통감부 세력에 저항했던 세력과 협력했던 세력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침탈-저항’과 저항의 이분법적 틀만이 아니라 대한제국 내의 ‘저항’과 ‘동화’의 양 측면도 보여줌으로써 민족 내부의 분열상을 드러내고, 병합으로의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넷째, 이와 함께 내용 중간 중간에 스페셜 테마를 통해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하거나 그간 논쟁이 되었던 부분을 제시하였다. 특히 ‘을사늑약’의 유무효 논쟁이나 병합조약 무효론 등 강점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모습이 보인다.
끝으로 저자는 근대 정치체제 형성을 둘러싼 민족 내부의 갈등과 일제의 국권 침탈 과정의 의미를 평가하고 있다. 대한제국의 각 정치세력들은 국권 상실의 직전까지도 자신들의 정치 참여 실현에 분주했고, 그들의 역량 미숙 속에 식민지화를 맞게 되었다. 스스로 참정권 획득의 역사적 경험을 갖지 못한 채 민족해방운동이 진행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한국사회의 과제는 근대 ‘민족’국가 수립의 문제로 환치되어버렸다고 한다. 여기서 일본 제국주의의 병합과 자발적인 시민 공동체 개념의 미형성이 현대 한국 정치의 미숙성을 낳았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 책은 대한제국이 일제의 침략을 받아 멸망해가는 과정을 쉽게 묘사해주었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움도 남는다. 우선 병합의 과정을 ‘정치사’에 한정하여 설명하였다는 점이다. 역사문제연구소의 ‘20세기 한국사’ 시리즈 중 대한제국 시기에 정치사 이외에 다른 분야가 고려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제의 침략은 정치·외교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사회경제적·문화적 침투 역시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한 점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면서 병합의 원인과 과정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고종의 생각과 대응만이 지나치게 많이 고려된 것은 아닐까? 특히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한 외교사, 외교정책의 비중이 큰데, 거기서도 고종의 활동으로 서술되고 있다. 기왕에 정치사에 주목한다면 당시 지배층이나, 지식인들의 인식을 함께 다루면서 국권 침탈의 과정에서 그들의 대응과 한계를 동시에 다루고, 나아가 의병전쟁 등 일반 민중층의 대응도 좀 더 부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끝으로 참고문헌이 책 말미에 소개되어 있는데, 본문 중에서 서술의 근거가 제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