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뱃속에 생겼을 때 엄마가 처음이라 태교에서 키우는 방법까지 육아 서적을 많이 읽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정신적으로 책 덕분에 조금이라도 수월할 수 있었다. 셋째를 낳았을 땐 세 번째라 쉬울 줄 알았다. 아이들마다 기질 등 모든 게 달랐기에 모든 게 처음인 것처럼 버벅댔다. 경우의 수를 대비해 도서관에 가면 육아 서적부터 찾았다. 나름대로 육아 전문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아이처럼? 긍정 육아라고 하니 어느 정도 내가 실천하고 있는 방식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다. 역시 판단은 금물!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육아와 프랑스 엄마들은 다르구나. 육아에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프랑스엄마이고 싶은건 사실이다.
삼형제가 고학년이 되고 자연스럽게 육아서적과 멀어지게 됐다..
프랑스 엄마들은 거만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프랑스 부모는 말한다.
”완벽한 엄마는 존재하지 않잖아요. 잠깐 죄책감을 느끼고 또 내 삶을 사는 거죠.”(185p)
[모든 것을 헌신하는 엄마는 불행한 아이를 만들 뿐이다.]
읽어가며 재밌었던 건 미국의 빠를수록 좋은 부모와 프랑스 부모를 비교하는데 미국이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해서 공감이 가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아이에게 집중하기보단 나 자신을 돌보며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을 보고 자라지 않을까?
매일 같은 시간에 아이들을 재우고 일부러 깨우지는 않는다.
- P145
크레쉬 교사들은 아무리 어린아기라도 다 이해할 수 있다는 완벽한 확신을 갖고 아이에게 말을 건다.
이 문장은 내가 삼형제를 키우면서 항상 마음속에 새기는 문장이다. 옹아리를 하는 아이도 어른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호한 경계가 주어지지만 그 경계안에서 많은 자유가 주어진다."
- P147
프랑스 부모는 말한다.
"완벽한 엄마는 존재하지 않잖아요. 잠깐 죄책감을 느끼고 또 내 삶을 사는 거죠."- P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