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젊은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언제 읽어도 인간의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고전 문학 작품들과 달리, 동시대 문학에서 우리는 ‘지금-여기’의 우리가 사는 삶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이야기를 원한다. ‘2024년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독자들의 투표에서 당당히 1위로 선택된 작가 성해나는 이를 훌륭히 해낸다. 내가 사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작가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재 한국 사회가 겪는 다양한 모순점을 포착해 낸다. 인물의 성격과 욕망, 갈등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늘날의 내가 겪는 고민과 맞닿아 있다. 작가 특유의 깔끔한 문체, 속도감 있는 서사 전개 방식은 이러한 트렌디한 소재와 더욱 잘 맞아떨어져 우리를 몰입시킨다.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에서부터 성해나 작가는 짧은 단편 안에서도 이야기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을 비틀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갈등 구조를 보여줘 왔다. 특히 세대를 중심으로 한 계층 간의 미묘한 어긋남과 갈등을 통해 독자에게 미묘한 불편함을 불러일으키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던 작가는 이번 소설집 <혼모노>를 통해 그러한 능력을 여전히 펼쳐냄은 물론, 보다 다양한 인물 군상으로 확장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올해 젊은 작가상 수상작으로도 선정된 작품이다. 소위 ‘덕질’이라 부르는 팬심이 가지는 입체적인 면을 집요하게 그려 내는 작품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공인의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요즘, 그런 인물을 좋아했던 팬의 마음을 소설은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 사람은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믿고 싶으며 애정하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한 채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마음. 그를 감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떨쳐낼 수 없는 묘한 마음을 작가는 죄를 저지르는 듯하면서도 흥분되는 ‘길티 플래저’라는 감정을 가져와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작품은 계속해서 독자에게 당신의 ‘모럴’은 무엇이냐고 묻는 듯하다.
<스무드>는 ‘2025 올해의 문제소설’과 2025년 봄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이다. 재미교포 2세대로서 스스로를 미국인으로 정체화하고 있는 화자가 처음 한국을 방문해 극우 태극기 부대 시위를 만나 겪는 감정을 서술하는 이야기이다. 화자 듀이는 제프라는 유명 화가의 매니저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스무드’는 그 화가 제프의 작품 이름이다. 검정색 구 형태의 작품은 어떤 의도도 담기지 않은 그저 매끈한 입체물일 뿐이다. 태극기 부대의 듀이에 대한 호의는 스무드처럼 매끈하다. 그 호의를 통해 듀이가 느끼는 고양감을 보며, 하나의 집단으로만 정체화될 수 없는, 그 안에 속한 다층적인 인간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표제작 <혼모노>는 작년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이라 읽어 본 경험이 있었다. 처음 읽을 때는 소재의 신선함에 주목했는데, 이번에는 작품의 구조가 보였다. 신이 떠나버린 30년차 무당과 하향길로 접어든 정치인 황보 의원. 목단 생화 줄기를 잘라 새것으로 갈고 선거운동 벽보 사진을 보정하는 등 ‘혼모노’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두 인물의 노력은 결국 좌절된다. 그렇게 해도 신애기로 떠난 신은 돌아오지 않고 선거 지지율은 젊은 후보를 따돌리지 못한다. “늙은 게 야심만 가득해 흉하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광기로 치닫는 화자의 결말은 혼모노(진짜)를 혼모노로 규정짓는 것은 누구냐고 서늘하게 되묻는 것 같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 참여자들을 고문하는 데 쓰였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모티프로 그것을 설계한 자의 시선에서 쓰인 작품이다. 건축물이 인간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이 합리성만 가지고 왜곡될 때 어디까지 치닫을 수 있는지를 극단으로 보여준다. 거북할 정도로 광기 어린 시선을 묘사하는 작가의 몰입력에 감탄하며 읽을 수 밖에 없던 작품이었다.
<우호적 감정>은 짧은 이야기이지만 표면적으로는 수평적인 관계 문화를 지향하면서 그 안에서는 세대 간 인식의 격차, 성차별적 관행, 여전히 수직적인 구조 등으로 인해 모순적인 갈등을 겪는 스타트업의 문제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팀 내부 관계를 어떻게든 잘 풀어가 보려는 막내 ‘나’에게 이미 수많은 투쟁 끝에 지친 수잔이 건네는 말 “이상적인 관계가 어디 있겠어요. 다 환상이죠.”, “너무 애쓰지 마요. 애쓰면 더 멀어져.”라는 말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면서도 씁쓸함을 안긴다. 거대한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무력해지는 개인을, 결국 연결되지 못한 채 파편화되는 개인들의 모습을 포착한다.
<잉태기>는 자녀 양육을 두고 시부와 갈등을 겪어 온 화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나’는 ‘자연스럽고 기껍게’ 자신이 가진 재력을 아낌없이 딸 서진에게 투자해 그녀의 인생을 탄탄대로로 설계하려고 하지만 매순간마다 고집 세고 고지식한 시부 지지와 부딪쳐왔다. 둘은 서로를 혐오하지만 시모의 말처럼 둘은 서로 닮아 있기도 하다.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결핍된 애정이 자식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질 때, 그 뒤틀린 애정은 결국 파국을 향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메탈>은 우림, 조현, 시우 세 인물의 학창 시절부터 출발하는 이야기이다. 헤비메탈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여 열정적인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던 친구들이 시간이 지나며 각자의 삶의 모습을 갖추어 나간다. 메탈 장르가 시간이 지나며 점차 퇴색해 갔던 것처럼 관계 역시 시간이 흐르며 어떤 우연한 계기로, 누구의 잘못도 아닌 채 그저 흐려지기 마련이다. 그 시절을 아쉬워하는 것도 다시 되살려내는 것도 결국 각자의 몫이 될 수밖에.
7편의 작품은 모두 인물들의 관계와 갈등을 세밀하게 그려 낸다. 표제작 <혼모노>의 광기 어린 무당처럼 작가는 이 시대 인물들의 욕망과 관계의 이면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의 건축 설계자 구본승은 시간이 지난 후 “이제 와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묻지만,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를 통해 작가는 말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없던 일이 될 수 없”다고. 그렇다.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기에 우리는 허무에 빠지기 쉽지만, 역으로 그 일은 이미 일어나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는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 배움을 얻을 수도 있다. 작가의 시선으로 그려낸 관계에 대한 고찰은 독자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클럽창비 서평단으로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읽어 보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