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혹은 그녀가 쓴 글이라면, 무엇에 관한 것이건 모조리 읽고 싶은 작가가 있다. 그런 작가를 만나는 것은 쉽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특별히 중요한 것을 말하지는 않지만 그, 혹은 그녀의 글은 중요함을 뛰어넘는 매혹이 있다. 남태평양 어느 섬에서 맡았던 꽃향기를 떠오르게 하는 멜랑꼴리라 할 만한 그런 매혹이다. 수잔 손택이 <우울한 열정>에서 폴 굿맨에 대해 쓴 것 중에서 나는 이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나는 그가 종이 위에 쓴 글은 전부 다 즐겼다. 그가 고집불통이고, 어색하고, 욕심을 부리고, 심지어 틀렸을 때조차도 나는 좋아했다. 그의 자기중심주의는 나를 밀어낸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감동시켰다.’
한 작가에게 빠지는 것은 그의 개성 때문이기도 하고, 나의 개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내가 느끼는 것을 나보다 더 섬세하고 깊게 파헤쳐 준다. 나를 스쳐간 인상들을 낚아채서 선물처럼 내게 다시 전해준다. “당신의 귀걸이 한 짝이 여기 떨어져 있군요. 작은 진주라.. 참 아름답네요.”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결국에는 그의 글이 그의 내면인지 나의 내면인지가 모호해지고, 그가 본 것인지 내가 본 것인지가 분명치 않게 된다. 마치 사랑처럼.
제프 다이어는 째즈 아티스트들에 대한 한 권의 책을 썼다. 책표지의 사진은 아웃포커스된 보도블록이다. 조리개 1.4정도의 심도만 있다. 돌로 된 바닥에는 비가 왔었는지 아직도 비는 내리는지 젖어있다. 길은 점점 흐려지고 저 멀리 있는 불빛은 흰 점들로 가득하다. 이런 시선이 나오려면 길바닥에 아주 가까이 내려앉아서 찍었거나 거의 엎드려야 했을 것이다. 미끌거리고 축축하고 어둡고 그러나 저 멀리에는 몽환의 불빛이 떠 있고. 그렇다. 제프 다이어의 책제목은 <but, beautiful>이다.
제프 다이어는 장르가 모호한 글을 썼는데 소설이기도 하고 비평이기도 하다. 레스터 영, 텔로니어스 멍크, 버드 파웰, 찰스 밍거스, 벤 웹스터, 쳇 베이커, 아트 페퍼, 듀크 엘링턴까지. 그냥 그가 사랑한 째즈 아티스트에 대한 사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의 사진을 보고, 자서전이나 다른 글을 읽고, 누군가의 증언을 듣고,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고나서 제프 다이어는 아티스트들이 처했을 상황을 상상하였다. 그 장면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라 위대할 것이 없다. 차를 타고 가면서 나누는 대화나, 술집에서의 싸움, 연주할 때의 자세, 감옥에서의 생활 등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제프 다이어는 섬세하고 시적인 글로써 그 모든 순간들을 음악처럼 만들어 버렸다. 다른 무엇도 아닌 째즈로. 그것이야말로 그가 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의 글은 째즈에 대한 어떤 비평보다도 째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당장 멍크나 듀크 엘링턴의 음악을 찾아서 듣게 만든다.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하기를, 이 책에 쏟아진 모든 찬사가 거짓이 아니었구나, 그렇군. 그리고 나는 이미 그의 다른 책들을 기다리게 된다. 그가 아무리 고집불통이고, 어색하고, 욕심을 부리고, 심지어 틀렸을 때조차도 그의 글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아트 페퍼가 나오는 장에 다음의 글이 쓰여 있었다.
-난 잘 모르겠어. 블루스가 뭐지?
-블루스? 이봐, 그건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야. 블루스에는 오만가지 것들이 다 들어 있어. 느낌이라던가......
-어떤 종류의 느낌?
-글세, 어떤 종류냐면....... 아마도 이런 거지.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어떤 문제 때문에 어딘가에 혼자 갇힌 사람의 느낌이랄까. 그리고 여자 친구와 그녀로부터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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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런 것이 블루스야.
-그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데도, 그렇지만,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