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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님의 서재
  • 슬픔이여 안녕
  • F.사강
  • 5,310원 (10%290)
  • 2011-03-25
  • : 1,709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를 읽고 깜짝 놀랐다. 어쩜 이렇게 심리 묘사가 뛰어날까? 열아홉 살 때 처음 쓴 장편소설로 단번에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샛별이 되었다고 한다. <슬픔이여 안녕>이 바로 그 소설이다. 작품 두 개를 읽고 나니, 우연히 하나 잘 쓴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는 왠지 부잣집에서 태어나 부르주아의 권태를 느끼며 예븐 얼굴을 프리미엄으로 맘껏 지적 허영에 빠져 살았을 것 같은 사강 류를 좋아할 것 같지 않아서 오랫동안 이 유명한 작가를 들춰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사강을 좋아하게 되었다...ㅠㅠ

슬픔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역시 소설가는 다르다... 뭐 이런 생각들을 했다. 역경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마치 사강 자신과도 같았을 열입곱 살 예민한 소녀 주인공 세실, 그리고 바람둥이지만 딸이 진짜 좋아하는 아빠, 그리고 아빠의 언제 바뀔지 모르는 애인, 이렇게 세 식구가 별 생각 없이 풍족함 속에서 느긋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아빠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 웬 청천병력이람? 아빠에게 그녀가 필요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똑똑한 딸이지만, 그녀에게 빠져 자신에게서 처음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빠의 모습에 세실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서부터 잔인함이 올라온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세실에게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거라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으리라.

세실은 아빠의 어린 옛 애인을 자신의 남자친구와 연애하는 것처럼 연극을 시켜서 아빠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그는 약혼자를 사랑하지만, 내 것이었던 애인이 다른 '젊은' 남자 품에 있는 것은 자신의 '늙음'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비참함을 느끼기 때문에 참을 수가 없다. 단지 어린 애인을 다시 빼앗아서 비록 자신이 버린 여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늙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잠시만. 결코 약혼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런데 어린 세실이 이런 자신의 아빠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잔인한 계획이 간단하게 먹힐 걸 알았다는 것, 하지만 그것이 이토록 비극으로 끝날 줄은 몰랐다는 것...

세실은 그녀의 빈 자리를 느낄 때마다 밀려 오는 야릇한 감정, 즉 슬픔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기꺼이 슬픔에게 안녕, 너구나, 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

여기서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인사는 헤어질 때가 아니라 만났을 때의 인사다.

길지 않은 분량 안에 강렬한 플롯과 심리 묘사가 잘 함축되어 있다. 사강 소설의 특징이다. 세상에는 참 여러 종류의 천재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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