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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M

타인과 의견이 달라서 마찰이 있었을 때 잘잘못 문제가 아니라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또는 내 의지나 책임과는 무관하게 상대방의 잘못으로 일방적인 상처를 받았을 때조차도,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면 먼저 손을 내밀고 무조건 용서하여 평화로운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는 암묵적인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화해는 해야겠는데 (감정적으로는 절대) 용서하거나 사과할 수 없는 감정의 부대낌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미안한 게 있어야 사과를 할 것이고, 아니면 잘못한 상대방이 용서를 구해야 용서를 할 것인데, 난 미안하지 않고, 상대방은 지 잘못도 모르고 용서를 구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내 속의 화는 더욱 커진다.
그런데 이 책이 참 고마운 말을 해줬다.
용서할 수 없으면 말란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거기다가 더 좋은 말도 해줬다.
용서할 수 없다는 내 마음의 상태를 깨닫고, 용서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 바로 용서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단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위조양심까지 많이 위로가 된다.
이 책은 단계별로 용서를 나눈다. 그리고 꼭 끝까지 클리어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사람마다 개인이 견딜 수 있는 고난의 정도와 처한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모두 동일하게 화평한 상태까지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걸 요구하면 시작이 틀렸다.

* 상처 입힌 것을 사과할 수 없거나 사과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는가?
* 후회하지 않는 가해자와 어떻게 화해하고 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가?
* 용서할 수 없으면 어떻게 피해를 잊을 수 있는가?
* 용서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나 혼자만의 일인가?
* 용서는 언제 가식적이며 언제 순수한가?
* 가해자는 용서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가해자가 나의 용서를 구하도록 어떻게 격려할 수 있는가?
* 자기 용서란 무엇인가?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

이 책을 읽다보면 ‘용서해야만 한다’는 고전적인 과제를 신선하고 독창적으로 접근했다는, 책 자체에 대한 평가도 내릴 수 있겠지만, 피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용서의 방법을 제시해줬다는 면에서 내 개인의 실생활에 도움이 됐다.
특히 ‘수용’이라는 개념을 허용함으로써 증오와 허무한 거짓용서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한다는 수긍할 수 없는 허술함에 괴로워하는 나에게 건설적인 또 하나의 단계를 위치지어 주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대를 증오하면서, 또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하면서 오도 가도 못한 채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내 감정과 시간을 허무하게 소비하는 것뿐이다. 차라리 상대를 용서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나까지 괴롭히지는 않아도 된다면 내 생활이 좀 더 행복하고 충실한 상태가 될 것 같다.
완전한 용서. 아직 난 잘 모르겠다.
가능하면 고맙지만, 안된다면 적어도 나 자신이라도 사랑하고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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