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속내를 들킨 듯한 기묘한 멋쩍음
에디터M 2007/08/1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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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속내를 들킨 듯한 기묘한 멋쩍음
치즈 짱은 프리타이다.
프리타, 라는 건 강인한 인종일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조직에 매달려 사회에서 밀려날까 두려워하며 정식코스를 밟는 수많은 나 같은 유약한 인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인한 신인류. 자신의 생존을 위한 행보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하지만 치즈 짱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동경하는 프리타인 치즈 짱의 고민도,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는 나와 별다르지 않다.
될 수 있으면 이대로 젊고 세파에 시달리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 될 수 있는 한 피부를 두껍게 해서 무슨 일에도 견뎌낼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본문 중에서
억센 손톱으로 원하는 건 무엇이든 움켜쥘 수 있는 강인한 신인류가 되고 싶었던 20대 초반의 세상에는 두려운 것이 너무 많았다. 그때 나의 소망은 치즈 짱과 같았다. 가능한 한 세상 안에 빠져들지 않고, 어떤 것에도 진심이 되지 않고, 그래서 상처입지 않고 싶었다. 작고 두꺼운 껍질 안에 덩치만 커다랗고 속내는 물렁한 나를 우겨넣고서 껍질 밖의 세상으로부터 연약한 나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했다. 강렬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언제나 담담하고 조용하게, 그렇게 살면 기쁨은 포기해야 할지라도 적어도 아픔은 맛보지 않으리라.
"세상은 안도 없고 밖도 없어. 이 세상은 하나밖에 없어."
칠순의 깅코 씨는 미묘하다. 처음 본 사람은 노망을 의심할 만큼 확실히 미묘한 할머니이다. 당연히 젊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체념해야 하는 늙은이가 왜인지 당연한 모든 것들을 은근슬쩍 무시한다. 무시하고서 겸연쩍어 하는 모습도 없다. 탱탱한 피부도 아니면서 치즈 짱의 고급 화장품을 훔쳐 쓰고, 칠순의 늙은이면서 남자친구와 함께 댄스를 추러 다니고, 자신만만한 젊은이들의 잔치인 발렌타인데이에 곱게 차려입고 초콜릿을 사러 간다. 지금껏 키우던 고양이들의 개별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체로키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고양이를 추억한다.
모든 것이 불안정한 치즈 짱이 보기엔 차라리 불안한 20대 초반의 어중간한 자신보단 노년의 삶이 더 즐거운 것 같다. 어서 빨리 나이가 들어 늙어버렸으면. 치즈 짱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이렇게 불안한 것은 아직 자신은 세상에 속하지 못하고 밖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 같다. 차라리 노년이 되면 어서 빨리 세상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조바심도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은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나만 허공에 떠 있다는 열등감도 사라질 것 같다.
나 역시 치즈 짱과 같은 생각으로 어서 빨리 서른 살이 오기를 열망했다. 서른 살만 되면 어디에서 딱 들어맞지 않고 둥둥 부유하는 이 어중간함이 사라지고 내 인생과 나 자신에 대해 자신이 생길 것 같았다. 저렇게 분주하게 다니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나 역시 세상 안에 확실히 속해져서 죄책감이나 멋쩍음 없이 확실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서른이 된 후에는 난 여전히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를 느끼고, 내가 지금 세상 안에 들어온 걸까 아니면 아직도 밖에 있는 걸까 고민한다.
그런 고민을 할 때면 답답한 마음에 혀를 차다가도 문득, 세상을 향해 날 숨기느라 방어하면서 지나버린, 감정의 요동치는 기쁨을 포기하고 대신 무덤덤한 안전을 선택해버린, 그래서 조금도 치열하게 고민하지 못하고 지나버린 사춘기를 지금 겪나보다 싶어 웃음도 난다. 아마도 난 사춘기다. 하지만 예전의 20대보단 조금 강해진 사춘기다.
이제 뭔가를 조금 알 것 같기는 하다.
세상의 안과 밖은 상관없다. 내가 있는 바로 이 자리가 바로 나의 세상이다. 이런 세상이 전 세계의 인류 수만큼 모여서 세상이 되었다. 난 지금 세상에 있다.
"제가 없어지면, 제 사진도 걸 건가요?"
"치즈 짱은 고양이가 아니잖아."
"걸어주세요."
"아직 안 죽었으니까 안 돼."
"하지만, 벽에 안 걸어놓으면 잊어버릴 거잖아요."
"추억은, 거기에 없어."
모든 고양이가 체로키가 되어도, 지금 나는 존재하고, 언젠간 존재했었던 존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꼭 존재하는 것이 내 존재의 의미의 전부는 아니니까.
추억은, 진짜 소중한 것은 존재에 있지 않다.
"끝나고 나서 차나 한잔 할래요?"
"네, 할래요."
나만큼이나 물러터진 치즈 짱이었지만, 한편으로 오오, 이 여자 제법 강단 있는데, 하며 은근히 감탄한 면도 있다. 후지타의 교제의 시작을 알리는 제의에 선뜻 네, 할래요, 라고 대답한 것처럼 치즈 짱은 세상에 대해 위축되어 있어도 결국은 다시 시작하곤 했다.
지금껏 나에게 난 당연히 연약한 존재였다. 미숙아, 불량품, 함량미달. 그래서 그런 내가 세상을 향해 손을 뻗는 건 반칙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정정당당히만은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생존을 위해선 반칙도 불사해야 한다. 그래서 난 세상을 향해 눈을 뜬다. 손을 내민다.
치즈 짱만큼 한 발짝씩 세상을 향해 생존하고 있는 나를 보여줄 수 있기를.
언젠간 끝이 날지라도 몇 번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그래서 몇 번이든 몇 번이든 다시 말할 수 있기를.
"네,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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